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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싱가포르

2007 싱가폴 셋째날5 - 강변 풍경

by 장돌뱅이. 2012. 4. 25.

강은 산을 에돌고 평지를 적시며 사람 사는 마을을 휘감고 흘러
곳곳에 정겹고 따뜻한 풍경을 만든다.
위압적인 원시의 자연이 아니라 도시를 가르면서 흘러
사람들과 익숙해진 싱가폴강은 더욱 그렇게 보인다.
강물 위를 미끄러지는 목선들의 움직임과 함께
훈훈한 사람들의 체취가 녹아 있는 듯하다.  


*위 사진 : 아침 강변 풍경

스템포드에서 에스플러네이드와 플러턴 호텔 주변을 돌아오는
아침 산책은 강물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새로움으로 반짝이는 아침 강물에는 크고 작은 강변 건물과
오고 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유화처럼 담겨 흔들렸다.  

호텔을 옮기는 날이다.
밤마다 볼 수 있었던 스탬포드호텔에서의 야경은
그 현란함으로 아내와 나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위 사진 : 래플즈시티내 마켓플레이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체크아웃 전에 래플즈시티를 다시 돌아보았다.
아내에게 딸아이를 위한 선물은 늘 부족한 듯 보였지만
래플즈시티에서 추가로 사지는 않은 채 돌아보기만 했다.
래플즈시티 내의 "MY FOOT" 라는 곳에서 발맛사지를 받고 난 후
숙소를 플러턴 호텔로 옮겼다.  

플러턴은 본래 우체국건물이었다는데 호텔로 개조를 하였다고 한다.
튼튼한 기둥이 도드라져 보이는 웅장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외양과는 달리 방은 무척 작았다.
(물론 우리의 방은 가장 낮은 등급의 방이었다.)

침대 역시 이제껏 내가 경험한 호텔 중에서 가장 크기가 작았다.
창문을 통해 강물이나 거리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호텔의 내부가 보이는 방이라 답답한 면도 있었다.
같은 등급의 다른 뷰 VIEW 의 방을 요청해보았지만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가 플러턴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강변의 풍경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수영을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만족스러운 이유이고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낮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수영장에서 보냈다.


*위 사진 : 플러턴의 수영장에서 본 싱가폴강

선선한 시간에는 주로 강변을 따라 보트키에서 클락키까지 산책하였다.
사람들을 태운 관광용 목선들이 오르내리는 강물을 보며
수영을 하는 것은 색다른 기분이었다.

가끔씩 수영장 중간에 팔을 벌리고 드러누운 채 떠있으면
하늘과 고층빌딩이 한 눈에 들어왔고
더 이상 욕심낼 것이 없는 듯한 한가로움이
내 몸을 지탱하는 부력이 되어 피어 올라왔다.  

플러턴의 에프터눈티도 경험을 해보았다.
래플즈호텔의 티핀에 이어 두 번째지만
싱가폴에서 애프터눈티에 대한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태국과 싱가폴이 같을 수 없어 무의미함에도) 방콕의 에라완티룸과
가격 대비를 해본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티타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그것도 단맛으로 치우진) 음식류가 부담스러웠다.

아내도 나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음번 여행부터는 어느 곳에서건 ‘애프터눈티’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기로 했다. 아마 우리 둘 다 전생에 옛 식민지시대 ‘본국’ 사람들의
고상한 문화와는 좀 동떨어진 삶을 살았었던가 보다.  

저녁 무렵 강변을 걷다가 목선을 빌려 타고 싱가폴강을 오르내렸다.
사위어가는 빛 속에 하나 둘 상점의 불빛들이 밝혀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불빛은 점점 또렷해져 갔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시원한 강바람을
맞기 위해 몰려들었다. 무더위에 숨죽이던 낮과는 달리 강변엔 화려한 생기가
돌면서 또 다른 하루를 개막하고 있었다.  

머라이언상의 맞은 편 선착장에서 배를 내렸다.
천천히 에스플러네이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글루톤스베이의 호커스센터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차이나타운의 푸드스트리트처럼 노점상 형태의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각 코너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식탁은 공용으로 사용하였다.
술은 음식을 파는 곳과는 다른 별도의 코너에서 사야했다.

전체적으로 가격도 맛도 분위기도 매우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닭똥집과 꼼장어구이 등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의 포장마차도
싱가폴의 호커스센터를 모델로 지역마다 군집화, 특성화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젊은 연인들처럼 아내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강을 따라 걸었다.
싱그러운 강바람이 비단처럼 부드럽게 몸을 훓고 지나갔다.
다리를 건너 가까이 다가가서 본 머라이언상은 생각보다 컸다.
머라이언 입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바람에 흩날렸다.

밤이 깊었지만 우리처럼 쉬이 잠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공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물안개를 맞으며 과장된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사진기 앞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여행은 추상적인 행복을 구체화하는 효율적인 시간이다.
그 속에는 머라이언상처럼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별안간 커다란 행복으로 드러나는 놀라운 마술이 숨어있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하루와 이런 저녁을 위해서라면 몇 배의 긴 수고로움이
필요하더라도 그것이 확실히 해볼 만한 ‘투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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