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싱가폴 넷째날6 - 강변에서 놀기

아침.
다시 강변을 걸었다.
이번엔 플러턴 호텔에서 출발하여 보트키와 클락키를 돌아왔다.
강물은 밤 사이에 한층 맑아진 얼굴로 하늘을 보며 누워흘렀고
간밤의 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강변의 음식점과 술집에도
풋풋한 아침 햇살이 차분하게 스미고 있었다.  

*위 사진 : 흰 색의 스탬포드 래플즈경의 동상이 상대적으로 커보이는 것에서 그에
               대한 싱가폴의 존경심이 엿보이는 것 같다.

내게 세상의 어느 곳을 가장 쉽게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걷는 것이다.
겉으로는 천차만별의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세상이지만
걷다보면 그 모든 것이 바람과 하늘과 물과 나무와 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더불어 그 속에 사는 사람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위 사진 : 플러턴 호텔의 아침식당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강을 바라보며 먹는 색다른 아침이었다.

그리고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 중의 하나,
수영과 독서와 휴식을 위해 수영장가에 자리를 잡았다.
수영장은 아직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잔물결하나 없이 잔잔했다.

우리는 개구쟁이처럼 그 고요를 깨뜨리며 수영을 했다.
그리고 의자에 길게 누어 젖은 몸을 강바람에 말리며 책을 읽었다.

높다란 건물 위로 오리털같이 하얀 구름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움직임도 없이 떠있었다.
가끔씩 강물을 오르내리는 나무배들의 엔진 소리가 들려올 뿐 세상은 마냥 평온했다.

플러턴 호텔의 꼭대기에 산마르코 SAN MARCO라는 식당이 있다.
식당 이름 뒤에 “AT THE LIGHTHOUSE”라는 말이 붙어 있었는데,
이곳이 예전에 실제로 싱가폴 연안의 배들을 위한 등대로 쓰인 적이 있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

전망과 분위기, 그리고 음식의 맛에서 아내와 나는 이번 여행 중 경험한
최고의 식당 중의 하나로 이곳을 꼽았다.
수영장과 함께 플러턴의 작은 방과 답답한 전망의 방을
다시 한 번 용서할(?) 수 있는 이유가 될 만한 식당이었다.

*위 사진 : 산마르코 옥상에서 본 풍경

식사를 마치고 옥상에 가보고 싶다고 하자 종업원이 그곳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옥상에선 머라이언 공원을 비롯한 싱가폴강 안팎이
잘 내려다 보였다. 밤에 오면 또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식당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가보지는 못했다. 나의 예산을 알고 있는 주머니 탓만이 아니라
이곳 이외에도 가보고 싶은 식당이 널려 있는 싱가폴에 비해 나의 일정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었다.

오후에 방에서 달콤한 낮잠으로 기운을 회복한 후
해가 기울어 밖으로 나온 우리는 이번엔 저녁 강변을 걷기 시작했다.
불이 밝혀지기 시작한 저녁 강변은 아침과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 중이었다.
우리는 아침과는 전혀 다른 곳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렇듯 여행은 우리가 어느 곳을 다녀 온 것이 아니라
어느 곳의 어느 순간을 지나친 것일 뿐이다.
매 순간마다 다양함 모습을 드러내는 세상의 신비로움에 젖어들 때만
그 속을 걸어가야 하는 여행도 비로소 끝이 없어지게 된다.

싱가폴에 온 이래 두 번째 게요리를 먹었다.
강변의 졈보레스토랑에서 칠리크랩을 튀긴 빵인 번과 함께 주문했다.
거기에 모닝글로리와 볶은밥을 곁들였다.

처음엔 너무 많이 시킨 것 아닐까 하여 서로 책임지라고 했지만
완벽하게 비워진 접시를 보고 아내와 나는 만족하면서도 민망한 웃음을 흘려야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강변의 모든 음식점과 바에는 넘쳐나는 인파들로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혼잡한 틈 사이로 음식을 안내하는 호객소리도 이어졌다.

바짝 다가온 한가위를 맞아 저마다의 소망을 적은 등을 다는 곳이 있어
아내와 나도 우리 가족의 건강을 비는 내용을 적어 매달아 보았다.
여행의 절반을 넘겼다는 아쉬움이 짙어갔다.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호텔로 돌아와 밤늦도록 야간수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