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형제여!

by 장돌뱅이. 2021. 2. 21.

Vincent van Gogh, 「The Good Samaritan」

이야기 하나.
태국 남부의 나라티왓과 얄라, 빠따니의 3개 주를 흔히 '딥 사우스(Deep South)'라고 부른다.
태국은 불교 중심의 국가지만 ‘딥 사우스’의 주요 종교는 이슬람이다. 이슬람 분리주의자들과 갈등으로 인한 인명 피해 소식이 가끔씩 전해지는 곳이다. 그 때문에 여행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여행이라는 인연으로 알고 지내는 한 지인이 이곳을 여행하며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전해주었다.

식당에서 자신의 밥값을 누군가가 대신 내고 간 것이다.
낯선 곳이라 그런 친절을 받을 만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식당 주인은 여행자를 환대하는 것이 마을의 전통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 뒤로도 몇 차례 같은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것이 어느 특별한 개인만의 선의가 아니라 그 지역의 일반적인 문화이고 정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을에 온 여행자를 환대하는 전통'이라니!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야기 둘.
중세 모로코의 여행가이자 순례자, 상인이며 법관이었던 이븐 바투타(1304~1368)는 마르코 폴로와 같은 시대에 세계 방방곡곡 여행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여행은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를 포함하여 중국, 수마트라에 이르기까지 무려 12만km에 달했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창작과비평사에서 번역, 출판된 바 있다.)
 
1326년에 이븐 바투타는 여행 중 다마스쿠스에서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다행히 현지인 싸카위가 친절을 베풀어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주었다. 하룻밤을 묵고 떠나려고 하자 싸카위는 극구 만류했다.
"나의 집을 당신 집이나 당신 아버지나 형제의 집으로 생각하시오." 
싸카위는 의사를 불러오고 의사가 처방한 약을 제조하고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이븐 바투타는 그의 집에 오래 머물며 병을 완치할 수 있었다.
이븐 바투타가 떠나는 날, 싸카위는 낙타와 식량뿐만 아니라 상당한 금화도 마련해 주었다. 
노잣돈이 떨어진 것을 알았던 것이다.
"유용할 때가 있을 터이니 받아두게. 형제여!"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루카 10장 29∼37)와 비슷하다.
'형제여!'라는 씨카위의 정감 있는 목소리가 들릴 듯하다. 넉넉하고 따뜻해진다.

이야기 셋.

함께 한국어를 공부하던 미얀마 청년이 한국에서 4년 10개월 동안 일을 하고 며칠 전 귀국을 했다.
이주 노동자에게 허락된 최장기간을 꽉 채워 일을 한 것이다.

계획대로라면(요즈음 미얀마 상황이 불안정하지만) 3개월 후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다.

그는 근무하던 회사에서 80만 원 정도의 돈을 받지 못하고 떠났다. 그에게는 10일 정도의 임금에 해당한다. 사장이 재취업 추천서를 빌미로 정산을 제대로 해주지 않은 것이다. 미얀마 청년은 고발을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재취업의 권한이 전적으로 사장에게 있음으로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은 법을 악용하여 노동자의 정당한 임금을 갈취한 것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품을 파는 사람을 억울하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너희 나라, 너희 성문 안에 사는 사람이면 동족이나 외국인이나 구별 없이 날을 넘기지 않고 해지기 전에 품삯을 주어야 한다. 그는 가난한 자라 그 품삯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너희를 원망하며 외치는 소리가 주님께 들려 너희에게 죄가 돌아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신명기」(24장 14∼15절)  -

여행자의 식비를 대신 내주거나 병을 치료해 주고 다른 도움은 주면서 '형제여!'라고 불러주지는 못할지라도 우리를 찾아온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는 일은 없어야겠다.


*우리 사회에도 어딘가 분명히 있을 '이방인'에 대한 너그러운 포용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 쓰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내가 과문한 탓이다.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은 이벤트  (2) 2021.02.26
다가오는 '퍼펙트 스톰'  (0) 2021.02.23
코로나 시대에 설날 보내기  (2) 2021.02.12
'손자체'의 입춘축  (0) 2021.02.05
2021년 1월의 식탁  (0) 2021.02.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