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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성실한' 꼼수

by 장돌뱅이. 2021. 3. 12.

LH페러디 게시물

 

LH 임직원들이 업무상 알게 된 개발 예정지의 땅을 미리 사두었다는 문제로 시끄럽다.
그런 땅에 개발보상비를 비싸게 받을 수 있는 묘목도 촘촘히 심어두었다고 한다.
역시 '꼼수는 성실하다.'
당사자들은 반성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막차(?) 탔다가 재수 없어 걸렸다고 자신의 불운을 탓하고 있을까?


나 역시 그런 정보를 몰라서 그렇지 그들처럼 알았다면 초연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우리나라엔 가난한 사람은 없고 부자가 못 된 사람만 있다고 하지 않던가?
부를 향해 들끓는 너나없는 욕망에 빗댄 말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땅을
모두 팔아 그 돈으로 미국 땅을 사면 우리도 국토 대국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아파트는 식구들이 모여 살기 위해 장만하는 '집'이 아니라 팔기 위해서 사는
유통 상품이 되었다. 

금융실명제, 부동산 실명제, 1가구 2 주택, 부동산 중과세, 등등 제도가 바뀌어도
한 번도 고민하지 않고(고민할 것 없었기에) 살아온 내가 융통성 없는 무능력한
존재로 느껴기도 한다.  
이른바 '헬'이 구체적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이미 와있는 건가?


고려시대 노극청(盧克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급 벼슬을 지내 집이 가난했다.
한 번은 집을 팔려다가 미처 팔지 못했는데, 마침 일이 생겨 지방에 내려가게 되었다.
그 사이 그의 아내가 현덕수(玄德秀)라는 사람에게 은 열두 근을 받고 집을 팔았다.
노극청은 개경에 돌아와 집값을 너무 비싸게 받은 것을 알게 되자 은 세 근을 가지고 현덕수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예전에 이 집을 살 때 아홉 근밖에 주지 않은 데다, 몇 년 동안 살면서 아무것도 수리한 것이 없습니다.
세 근을 더 받는 건 의리가 아니니 돌려드리려 합니다."

현덕수 또한 의리 있는 선비였기에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어떻게 당신 혼자만 의리를 지키고 나는 그러지 못하게 하시오?"

현덕수가 끝까지 받지 않으려 하자 노극청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평생 의리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싸게 산 것을 비싸게 팔아 재물을
탐내겠습니까? 선생께서 제 말씀대로 하지 않으신다면 집값을 모두 돌려드릴
테니 제 집을
도로 주십시오."


현덕수는 하는 수 없이 은 세 근을 받았지만 
"내가 어찌 노극청만 못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라며 결국에는그 은을 절에다 시주하였다.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 ∼1241)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규보가 『명종실록(明宗實錄)』을 편찬하면서  실제 이야기라고 했다.
노극청이나 현덕수가 지금도 어느 곳에 살아있으리라 기대하긴 힘들지만,
가끔씩 우리가 사는 모습을 비춰볼 필요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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