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전쟁 당시 농민군들은 몸에 궁궁을을(弓弓乙乙)이라 적힌 부적을 붙이거나 불살라 먹었다고 한다. 부적의 신통력이 관군과 일본군의 총탄을 무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혹은 영생불사의 힘을 달라는 기도였는지도 모르겠다.
3월 7일 자 경향신문에 우리로서는 낯선 미얀마 시위 현장의 한 풍경이 보도됐다.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미얀마 시위대들이 군경의 진입을 막기 위해 여성의 치마(터메인)를 빨랫줄에 걸어둔 것이다. 미얀마에서는 여성의 빨랫감 아래로 남성이 지나갈 경우 남성성을 잃는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시위 진압대들이 차를 멈추고 지붕 위에 올라가 빨래를 걷어내는 담고 있었다. 그런 걸로 보아 속설이 미얀마 남성들 사이에 실제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얇은 옷가지 몇 벌이몽둥이와 총을 앞세운무도한 자들의 압박을 얼마나 오래 막아낼 수 있을까?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군부에 저항하고자 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절박한 심정이 읽힐 뿐이다. 오래전 동학농민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함께 한국어를 공부하는 미얀마 노동자가 우리나라의 80년 광주민중항쟁처럼 미얀마도 이기겠다는 사진을 다짐처럼 보내왔다. 어제저녁 텔레비전에 나온 한 미얀마 여성도 광주를 이야기하며 도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합리적 이성이나 앞장선 진보도 오월 광주의 처절함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세상은 바다 건너 아비규환을 자신의 주판 속에서 튕겨볼 뿐이다. 치마 걸린 빨랫줄로 경계 지어진 미얀마의 이쪽저쪽을 보며 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을 긍정도 하고 부정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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