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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내가 태어나 잘한 일 몇 가지

by 장돌뱅이. 2021. 3. 8.


비대면 영상으로 하는 음식 강좌를 들었다. 첫 시간 메뉴는 마파두부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마파두부(麻婆豆腐)는 옛날 중국 사천 지방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떤 맛이었을까? 지금 우리가 접하는 마파두부와는 얼마나 다를까?
하지만 호기심 이상으로  시원(始元)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다. 문화는 전해지고 섞일 때
살아있는 것이므로 '최초'라는 시점과 모양에 상관없이 세상의 모든 문화는 '오리지널'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마파두부는 식당마다 레시피마다 재료와 조리방법이 조금씩
다르고 당연히 맛도 다르다.
하긴 같은 레시피를 보고 만들어도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지 않던가.
세상은 다양해서 즐겁고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각설하고, 마파두부는 두부와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두반장과 춘장 등의 양념을
넣어 볶고 졸여서 만들었다.
네비를 보고 초행길을 운전하듯 레시피와 강사의
설명을 따라 계량을 하고 불을 피웠다.


내가 만든 모든 요리의 첫 시식자이자 평가자는 언제나 아내다.
마파두부는 아내에게 후한 평가를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춤추는 고래'가 된다.
둘이서 마주 보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고즈넉하다.
내가 부엌에 서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지 대략 10년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부엌을 전담한 지는 아무래도 은퇴 후인 4년 정도이다.

언젠가 어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니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담배 끊은 것과 곱단이(아내)랑 연애하고 결혼한 것이다."
 '뭐지? 칭찬인 듯 칭찬 아닌 칭찬 같은 험담?'
나를 나 이상으로 잘 아는 어머니지만 나는 퉁명을 과장한 억양으로 대꾸를 했다.
"아니 어머니,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리도 잘한 일이 없다는 말씀이세요."
어머니는 "아무 소리하지 말고 너는 곱단이가 하자는 대로 하고 살아라!"라고 말씀하실 뿐이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당신 아들을 만나주고 살아주기까지 하는 아내가 고마우셨던 모양이다.
귀밑머리에 서리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나도 어머니의 말씀에 자주 공감을 하며 지낸다.

은퇴 후 나는 친구들에게 강권하곤 한다.
"부엌 앞으로 가라. 백수의 앞치마는 세계 평화를 앞당기는 법이야."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셨다면 내가 잘한 일에 한 가지를 더하실지 모르겠다.

"니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담배 끊은 것과 곱단이랑 사는 것에
요리를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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