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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브런치 수업

by 장돌뱅이. 2021. 5. 3.

여행을 하면서 '내가 정말 여행을 왔구나' 하는 실감을 할 때가 있다.
 공항 라운지에 앉아 있거나 출국 (입국)심사대를 통과했을 때 ,
혹은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공중으로 솟아오를 때나 목적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등등.
느끼는 시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각 나라의 공항엔 그 나라 특유의 냄새가 있다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냄새라고 했지만 그것은 후각만이 아니라 온몸의 감각이 총체적으로 감지하는 '무엇'이다.
실재하는 냄새라기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반응내지는 교감이라는 말이 적절하겠다.
그런 색다른 냄새가 사방에서 감지될 때  사람들은 '순간 이동'의 마술을 짜릿하게 느끼곤 하는 것이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방을 안내 받아 깔끔하게 정리된 순백의 시트 위에 누워'야  여행을 실감한다는 사람도 있다.
방에 들자마자 짐을 그대로 둔채 우선 침대 위에 큰 대자로 벌러덩 누워서 바라보는 천장엔
도착의 기쁨과 이제 여행이 시작된다는 기대감이 뭉게뭉게 번진다. 

나도 떠나기 전의 설렘과 안전하게 돌아와 성취감을 느낄 때까지 그 모든 과정을 여행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내가 여행을 가장 실감할 때는 도착 뒷날 아침의 식사 때다.
여행지의 아침이 시차 때문에 한국의 한밤중일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여행은 늘 현지가 기준이다.  

느긋하게 일어나 한껏 게으른 걸음걸이로 걸어가 간단한 말 몇 마디로 남이 차려주는 음식 - 브런치.
그것이 여행지의 고유 음식이어도 좋고, 토스트니 베이컨이니 하는 '인터내셔널'이어도 그만이다.
중요한 건 '이 시간' - (직장 다닐 때는) 남들 다 바쁘게 일하는 시간 - 에 한껏 게으를 수 있다는 특권이다.
향긋한 커피와 달콤한 음식, 조용한 음악,  눈부신 햇살 같은 주변의 변화들이 오감으로 스며들면
'아 내가 정말 멀리 떠나왔구나!' 하는 감격(?)으로 충만해진다.
그래서 내게 브런치는 늘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블루베리콤포트는 재료를 준비 못해 잼으로 대신했다.


5월 매주 월요일엔 브런치 요리 수업을 받기로 했다.
지난 3월에 받은 수업처럼 영상으로 하는 비대면 방식이다.
오늘은 첫날로 프랜치 토스트와 블루베리 콤포트를  만들었다.
프렌치 토스트는 집에서 여러 번 만든 적이 있지만 블루베리 콤포트는 처음이었다.

강의를 들으며 만든 프렌치 토스트와 일부러 먼 이국 여행의 기억이 담긴 머그잔에 커피를 담아내는 플레이팅으로
여행지의 기분을 내려고 했지만,
젠장! 아카데미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도 아닌 우리가 모의 상황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말이다. 떠나
고 싶다는 욕망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커지고 말았다.
내가 만든 브런치에 아내가 만족스러워 했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갈 수 있는데 안 가는 것과 원천적으로 코로나에 봉쇄되어 못 가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매주 월요일 브런치를 만들어 여행 '시뮬레이션'이라도 부지런히 반복하며 버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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