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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미나리와 영화『미나리』

by 장돌뱅이. 2021. 4. 25.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 떼 뿅뿅뿅뿅 놀다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앙증맞게 종종걸음 치는 노란 병아리 떼와 파란 미나리 싹의 이미지가 봄과 잘 어울린다.
어린아이가 병아리 떼가 놀던 자리에서 엄마를 급하게 부르는 듯한 노래도 예쁘다. 
(다만 병아리는 집밖 미나리꽝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커야 울타리를 비집고 나가 집 근처 텃밭을 다니지 병아리 스스로는 절대 그렇게 할 줄
모르고 엄마 닭도 애기들을 데리고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미나리꽝"에 대하여 "미나리를 심는 논"이라고 설명한다.

"땅이 걸고 물이 많이 괴는 곳이 좋다"라고 덧말도 붙여 놓았다.
어떤 단어에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미나리 논이라고 하면 이해도 쉬울 텐데,
왜 굳이, 그것도 미나리에만 꽝을 붙여 미나리를 키우는 장소의 의미로 쓰는지 궁금해진다.
혹시 미나리가 한번 심어놓으면 여러해를 두고 먹을 수 있어 미나리'광(庫房)' 같다는 의미로쓰다가
미니리'꽝'으로 된 건 아닐까? 

근거 없는 상상일 뿐이지만 좀 밋밋한 미나리 논보다는 미나리꽝의 어감이 훨씬 재미있게 느껴진다.

지금은 재배기술의 발달로 채소와 과일이 본래의 계절을 잃고 아무 때나 나온다.
딸기가 겨울 과일이 된지 오래고 미나리도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남원)미나리라도 여름 것은 먹을 것이 못 된다는 말에서 보듯
원래 미나리는 독특한 향기와 풍미로
봄철 입맛을 돋우는 채소였다. 아직 쌀쌀한 이른 봄  얼음처럼
시린 물에서 캐낸 봄 미나리는 싱싱한 채소가 귀했던 옛날엔 진짜 별미였을 것이다.



조선시대 한양 곳곳에서 미나리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채소였던 것 같다.
조선을 다녀간 중국 사신이
조선의 왕도인 한양과 개성에서는 집집마다 모두 연못에 미나리를 심어놓았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였다.
미나리가 충성과 학문을 상징하고, 김치를 담글 정도의 인기가 있는 채소라서 그랬겠지만
무엇보다 
키우기 쉽다는 장점이 있어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미나리는 생명력이 강해 줄기를 잘라 밭에 던져놓으면 이내 자리를 잡으며 똑바로 서서 자란다고 한다.
키우기 쉽고 게다가 여러해살이로 두고두고 먹을 수 있으니 기특한  작물이 아닐 수 없다.


미나리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생으로 된장을 찍어 먹거나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어도 맛이 훌륭하다.
식초 넣고 무치는 무침들 - 오징어무침, 홍어무침,  가오리무침, 서대무침, 쭈구미무침, 등 에 들어가도 잘 어울린다.
또 구운 삼겹살에 미나리를 곁들이기도 한다. 



한인 이민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미나리』가 화제다.
아카데미상에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우주연, 여우조연, 각본, 음악상 등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있다. 그 중에 내일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영화는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 가족의 고군분투에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의
강한 생명력의 의미를 더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그런 의도를 정서적 공감으로 숙성시키지 않은 채로 너무 쉽게 드러낸 것 같아 아쉽다.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고 목청이 높던『국제시장』의 해외 이민 버전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개별적인 일화들은 산뜻(?)했지만 짜임새 있는 구도 속으로 모아지지는 않았다.
이방인 가족의  내적 갈등만이 아니라 현지에 녹아드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을 , 언어와 차별 등
외적 갈등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미국인의 감성으로 만든 한국인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이민까진 아니지만 직장일로 해외생활을 10년 정도 한 경험이 있는 아내와 내게 할머니(윤여정)가
딸네 집에 도착한 날
고춧가루와 멸치
등을 꺼내놓은 장면엔 감회가 새로웠다.
김치에 고춧가루, 육수에 멸치는 한국인에게 공식 아닌가.
아내도 한국을 다녀갈 때마다 두 가지는 빼먹지 않고 짐을 꾸렸다.
특히 고춧가루는 "국산은 매우면서도 단맛이 있고, 맛이 김치에 스며든다면
외국 건 맵기만 하고 겉돈다."는 것이 아내를 비롯한 교민들의 일반적인 설명이었다.

쓰다 보니 미나리 이야기가 고춧가루까지 이어졌다.
삼각지 근처 대구탕 골목의 얼큰하게 고춧가루를 푼 대구탕이 생각난다.
미나리를 수북이 올려놓고 숨이 죽어 국물 맛이 스며들면 건져먹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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