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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나란히 가지 않아도

by 장돌뱅이. 2021. 4. 11.


아침에 따릉이를 빌려 타고 강변을 따라 명동으로 달렸다.
함께 한국어를 공부하는 미얀마 친구들이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러 온다고 해서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개나리와 벚꽃이 지는가 싶더니 철쭉이며 난데없는 튤립까지 봄꽃의 행진이 화려하다.
사람이 가꾼 것이라 해서 아름다움이 덜 하지 않았다.
날씨까지 화창하니 자전거 타기에 더없이 좋았다.


명동에선 피켓을 든 십여 명이 한 조로 일정 시간마다 교대를 해가며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코로나로 거리를 유지하다보니 일인 시위에 가까웠고 시위라기보다는 애절한 호소였고 하소연이었다.
그 대열 속에 전날 밤 12시까지 야간 작업을 한 피곤함도 접어둔 채 두 시간 가까이 전철을 타고 온 미얀마 친구가 보였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나의 삶이 무의미해지는 때가 있다. 
내가 버리지 않았어도 누군가 함부로 흩어놓은 쓰레기를 나서서 치워야 할 때가 있다.


스피커에서는 자주 우리의 80년대 노래 - 님을 위한 행진곡'과 '광야에서'가 뜻을 알 수 없는
미얀마 구호와 노래 사이사이에 이따금씩  흘러나왔다.
현수막에 쓰여진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글귀도 낯익은 것이었다.

아픈 기억의 공유······ 이 좋은 봄날에 인간이 저지르는 야만은 끝이 없다.
벌써 6백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미얀마 사태는 수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집단은 국가, 그것도 자신이 소속된 국가라고 한다. 
( 이전 글 참조 : "
2018.05.20 -  '그해'에서 올해까지 ")


시위를 마친 친구와 명동 일대를 걷다가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도 따릉이에 올라 손병휘의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리며 달렸다.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긴박함과 처절함에 비해 너무 느슨한 분위기의
노래 같지만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가는' 거라는 마음만큼은 전하고 싶었다.


누군가 누군가 보지 않아도 나는 이 길을 걸어가지요
혼자 혼자라고 느껴질 땐 앞 선 발자욱 보며 걷지요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쉬어가도 서로 마주 보며 웃음 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마음의 마음의 총을 내려요 그 자리에 꽃씨를 심어 보아요
손 내밀어 어깨를 보듬어 봐요 우리는 한 하늘 아래 살지요
얼굴빛 다르고 하는 말 달라도 서로 마주보며 웃음질 수 있다면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

- 손병휘, 「나란히 가지 않아도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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