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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주꾸미 이야기

by 장돌뱅이. 2021. 4. 6.

주꾸미는 낙지문어처럼 머리에 발이 달려 두족류에 속한다.
주꾸미의 머리는 사실 몸통이다. 그 안에 소화기관과 내장, 아가미, 생식기도 들어있다.
여덟 개의 다리 한가운데에 입이 달려있다. 다리에는 흡인력이 엄청 센 빨판이 붙어 있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는 주꾸미가 고려청자를 끌어안고 올라와 바다 밑 보물 위치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이 주꾸미를 강장식으로 치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안에서 많이 잡힌다.
충남 서천에서는 주꾸미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보통 '쭈꾸미'라고 하지만 주꾸미가 표준이다. '돈가스'가 아니고 돈가스인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조만간 짜장면과 자장면처럼 두 가지가 다 인정받지 싶다.
한자어로는 '웅크릴 준'을 써서 '준어(蹲魚)로 부른다. 『자산어보』에서는 '죽금어(竹今魚)'라고 했다. 죽금어에서 주꾸미가 유래된 것일까? 아니면 주꾸미가 먼저고 쓰기를 죽금어로 한 것일까?

주꾸미는 봄이 제철이다.
꽃소식과 함께 주꾸미는 머릿속(몸통)을 '밥알(주꾸미 알)'로 가득 채우고 '해산'할 곳을 찾는다.
알을 낳고 입구를 막는 습성이 때문에 주꾸미는 소라 껍데기를 좋아한다.
어부는 빈 소라를 줄에 엮은 '소라방'을 바다에 던져놓고
주꾸미를 유인한다.
이곳에 들어 몸을 푸는 주꾸미는 암놈이다. 주꾸미는 산란한 후 50여 일 동안 빨판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이물질을 닦아내며, 새끼가 깨어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지킨다.
새끼가 태어나면 기력을 소진한 어미는 곧 죽게 된다.

뱃전에 서서 뿌려 두었던 / 빈소라 껍질 매단 줄을 당긴다//
먹이로 속이는 낚시가 아닌 / 길을 가로막는 그물이 아닌 / 알 깔 집으로 유인한//
주꾸미들 줄줄이 딸려 올라온다 / 머리 쪽으로 말아 올린 다리 흡반에 / 납작한 돌 조개껍질 나무말뚝 껍질로 / 대문 달아 건 채 / 물밑 바닥이 뻘이라 아직 대문 못해 건 놈은 / 올라오다 떨어지기도 하며//
뭐야, 또 두 마리! / 먼저 든 놈 대문 완벽하여 / 문이 벽이 되어 / 겹대문 / 겹죽음일세//
뱃전에 서서 빈소라 껍질 매단 줄을 당기면 / 배가 흔들리고 / 길에 매달린 세상 집들이 흔들린다

- 함민복, 「주꾸미」 -

'소라방'으로 주꾸미를 잡으면 크기가 일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잡는 양이 적다.
시장의 요구를 따라가기 위해 그물로 잡을 수밖에 없다. 가을철에는 낚시로도 잡는다. 
철을 가리지 않고 알을 밴 채로 혹은 아직 새끼인 채로 잡다 보니 연안의 주꾸미가 귀해졌다.
당연히 국산 주꾸미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대안으로 수입산이 등장했다.
중국은 물론 태국, 베트남에서도 들어온다.

"접때 장부텀 봄 것은 읎는 게 읎이 죄 새로 나와 만전했던디 그 흔해터진 쭈꾸미 한 코 못 만져보고 사네."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의 연작 소설 『우리 동네』에 나오는 충청도 여인네의 넋두리다.
소설의 시간적 무대는 70년대 말 80년 대 초다. 그때는 주꾸미가 '흔해터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주꾸미 '한 코'가 금값이 된 지 오래다.

재작년 요리 수업을 받을 때 선생님이 국내산과 수입산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주꾸미 눈 밑에 동그란 금테가 있으면 국내산이고 없으면 수입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중국산에도 금테는 있다고 한다. 다만 금테가 선명할 경우 신선하다는 의미만 있다는 것이다.

중국산은 상처가 많고 색이 누런데 비해 국내산은 상처가 적고 검은 편이라고 한다.
그런 사실을 숙지했어도 명확했던 금테 기준이 사라진 후, 나로서는 국내산과 수입산의 구별이 쉽지 않다. 언젠가 시장에 갔더니 어물전 주인이 수입산이 명확해 보이는 걸 놓고 국내산이라고 주장했다. 아무 말없이 사 오긴 했지만 상인들이 국내산은 국내산대로 수입산은 수입산대로 정확한 원산지 표기를 해주고 적절한 이윤만 더해서 공급했으면 좋겠다. 믿고 사는 사회, 이 부분에서도 아쉽다.

주꾸미를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데쳐 먹고, 구워 먹고, 볶아 먹고, 무쳐 먹는다.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로, 삼겹살과 섞어 주삼불고기로, 샤부샤부로도 먹는다. 
주꾸미를 넣은 수제비도 만든 적이 있다. 먹어보지 못했지만 주꾸미영양돌솥밥도 들어봤다.
주꾸미 먹물에 라면 사리를 넣어 끓여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떻게 요리를 하건 아내와 내게 주꾸미 요리의 결론은 하나, '맛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 봄철 시그니쳐 요리 중의 하나인 '주꾸미 미나리 무침'을 만들어 보았다.
먼저 주꾸미 머리를 뒤집어 내장을 떼어내고 몸과 다리를 분리하여 밀가루로 박박 문질러 씻는다.
끓는 물에 소금을 넣어 살짝 데치고 나면 주꾸미의 몸은 붉고 하얀색으로 도드라지게 변한다.
옹그라진 다리 모습이 봄꽃처럼 예쁘다.

여기에 미나리와 파프리카, 양파 등을 더하여 고추장 양념에 무쳐내면 된다. 
봄 미나리의 향긋함과 탱탱하고 쫄깃쫄깃한 주꾸미의 식감이 새콤달콤한 양념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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