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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우리는 누구인가

by 장돌뱅이. 2021. 5. 15.


위 그림은 게오르게 그로스가 1926년에 제작한 「사회의 기둥들」이다.
그림은 부패한 사회 지배 세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조롱을 담고 있다.
'사회의 기둥들'로 힘을 가진 정치가와 군인, 언론과 성직자들은 진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귀가 없거나 눈이 막혀 있고, 있어도 외면하고 있다. 그들의 열린 머릿속에는 쓰레기와 배설물이 가득하다.
평화의 상징이라는 종려나무 잎에는 피가 묻어 있다.

요 며칠 사이 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들 뉴스가 연이어 보도되었다.
뉴스는 평소에 없던 비극이 갑작스레 최근에만 특별히 일어난 것인 양 흥분했다.  
하지만 "다녀 오겠습니다" 라는 경쾌한 아침 인사를 비감한 유언으로 남기며
노동자들이 터무니없는 생의 정거장으로 내몰리게 된 건 이미 오래 전부터다.

2020년 산재 사고 사망자는 전년에 비해 27명(3.2%) 증가한 882명이었다.

이틀에 다섯 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잠시 분노하거나 애달퍼하지만, 이내 생명을 '가성비'로 저울질하거나
순수한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순수한' 정치적 주장에 목청을 높이며 편이 갈리곤 한다.
잠시 흔들렸던 눈과 귀를 요동치는 아파트와 땅, 주식 시세로 다시 황급히 되돌리면서.
'우리는 은연중에 지금과 같은 삶의 질서는 절대 불변할 것이라는 생각과 뒷구멍으로는 야합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전혀 불안하지도 무섭지도 않은 척 멀쩡하게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게오르게 그로스의 그림처럼 우리의 머릿 속을 열어보면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이미 잘 알고 있을 그것을 남에게 감추고 싶은 사람은  나뿐일까?


당신은 학생이 아니다
졸업한 지 오래됐다
당신은 노동자다 주민이다
시민이다 국민이다 아버지다
가정에서 존경받는 남편이고
학부모며 집주인이다
환자가 아니고 죄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모두다
아침이면 건강쎈터로 달려가 호흡을 측정하고
저녁이면 영어강습을 받으러 나간다
노동자가 아니기에 구조조정엔 찬성하지만
임금인상 투쟁엔 머리띠 묶고 참석한다
집주인이기에 쓰레기매각장 건립엔 반대하지만
국가 경제를 위한 원전과 운하 건설은 찬성이다
한 사람의 시민이기에 광우병 소는 안되지만
농수산물 시장개방과 한미 FTA는 찬성이다 학부모로서
학교폭력은 안되지만, 한 남성으로
원조교제는 싫지 않다 사람이기에
소말리아 아이들을 보면 눈물 나고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에 보내는 쌀은 상호주의에 어긋나고
미군은 절대 철수하면 안된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송경동, 「당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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