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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비오는 주말

by 장돌뱅이. 2021. 5. 16.

토요일 오전, 한강 산책을 갔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던 빗방울은 금세 굵어졌다.
한강 변에는 비 피할 곳이 다리 밑뿐이라 중간 지점에서는  무방비로 젖을 수밖에 없다. 

서둘러 뒤돌아  오다가 마주오고 있는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준비 해 온 우산을 내밀었다.
산책 전 우산을 챙기라는 아내에게 너무 걱정이 많은 거 아니냐며 코웃음을 쳤던 나는 겸연쩍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조강지처 말은 무조건 들어야 돼!"

오징어(진미)채전
감자채전

한번 시작한 비는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내렸다. 오래 내리는 비는 입을 궁금하게 한다.
아내가 좋아하는 전을 만들기 위해 냉장고를 뒤졌다.
요즈음 말로는 이런 걸 '냉파(냉장고 파먹기)'라고 한다던가. 

진미채와 감자가 적당해 보였다.  
감자채는 몇 번 해먹은 적이 있지만 진미채로 전을 만들게 된 건 최근이다.
아마 EBS의 "최고의 요리비결"에서 배웠을 것이다.
일부러 창문을 열어 빗소리를 불러들이고 음악과 함께 전을 먹는 오붓함.
비가 한 일주일 계속되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몇 년 전,
타일러스벅 근처 노천광산에서 일했었거든.

하루는 눈이 오기 시작하더니 두 시경엔
허리까지 내린 거야

"집엘 가겠습니다." 반장에게 말했어.
"다섯 시까지 기다려보지 그래?" 하길래
"소들을 돌봐야만 해요." 둘러댔지.
완다가 집에 잘 있는지 봐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네 시쯤 집에 다다랐는데 그사이 눈은
가슴까지 쌓였고 내리고 또 내렸어.

완다와 나는 사흘 내내 아무도 만나지 못했지.
눈 더미 속에 굴을 뜷고 철조망 담을 넘어 다니며
눈을 녹이는 심장 소리에 얼마나 웃어댔던지.
먹을 것이 떨어져 소라도 잡을까 생각했었지.
그때 그만 날이 개고 사과알같이 달콤한 달이 떠올랐어.
다음 날 아침 제설차가 도착했는데, 슬프더군.
요즘은 눈이 그렇게 오지 않아. 다 그런 거지 뭐.

-  폴 짐머 (PAUL EDWIN ZIMMER),  「완다와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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