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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그림자 노동의 역습』

by 장돌뱅이. 2021. 6. 24.


80년대 초 나는 지방의 공장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공장이 몰려있는 공단은 보통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 대중교통이 드물었다.

외근을 하기 위해선 부서 공용 차량 신청서를 쓰고 결재를 받아 운전수와 함께 가야 했다. 운전면허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외 공문은 팩스도 없던 시절이라 텔렉스를 이용했다. 텔렉스를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었다.
그 시절엔 텔렉스 '요원'을 양성하는 학원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이른바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보였다.
약삭빠른 운전학원은 직장인들을 위해 공장까지 찾아와 점심시간을 이용한 '합격 보장'의 출장 강습을 해주었다.
면허증을 받고 저마다 크고 작은 차를 장만한 후에는 자신들의 차를 직접 몰고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팩스를 거쳐 이메일이 개발되면서 사무기기로서 텔렉스의 시대는 마감되었다.
직장인들은 이제 예전의 텔렉스 담당과 운전 담당이 하던 일을 직접 한다. 
누구나 휴대전화를 갖고 있으니 전화를 받아주거나 연결해주던 직원도 필요 없어졌다.

그러나 "일자리는 사라져도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지금도 분명 그 일을 하고 있다.

다만  'Multitasking'이라는 시세에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별도의 대가가 지불되지 않을 뿐이다.
램버트는 『그림자 노동의 역습(SHADOW WORK)』에서 '돈을 받지 않고  회사나 조직을 위해
행하는 모든 일'을 그림자 노동으로 정의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예전에는 기업이 직원을 고용해서 임금을 주고 해오던 일을 우리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직접 해오고 있다. 예를 들면 스타벅스 커피잔 치우기, 샐러드바, 인터넷 여행 예약, 주유소 셀프 주유,
은행 업무, 마트의 셀프 계산대, DIY 등등이 그렇다.

가사노동은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그림자 노동이지만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시대에 따라 큰 변화가 있어 왔다.


"종종 사회적 변화는 색다른 일 처리 방식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사회 규범이 등장할 때

함께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그림자 노동을 파생시킨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데이터의 골드러시가 진행 중이다. 정보 경제가 성장하고 사실 수집이
기술적으로 섬세해지면서 이 골드러시는 계속될 뿐 아니라 확대되기까지 할 것이다.  기업들은 고객에게
거래를 원만하게 처리하거나 물건을 구입할 생각이면 개인정보를 내놓으라고 정기적으로 요청한다.
구매 프로필은 표 적화된 판매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고객은 인터넷에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계정'을 개설하는 그림자 노동을 해야 한다.  옛날에 물건의
구매는 구입한 물건과 돈을 교환하는 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요즈음 상거래는 설문조사라는 노동을 추가해야 한다."

"이제 그림자 노동은 노동이나 소비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제도적 소유권을 실행하는 제3의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림자 노동은 제도적 구상을 위해 새로이 징발한 자유시간을 조종해 나간다.
처리해야할 일들을 점점 더 많이 발생시키면서 현대인들을 계속 분주하게 만든다."


다시 80년 대의 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매달 월급날이 가까워오면 급여계의 직원들은 바빠졌다.
고정 월급자가 아닌 시급으로 받는 수천 명에 달하는 직원들의 급여 계산 때문이다.
당시에는 기본급 외에 잔업과 특근, 철야에 따른 개인별 변수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다.
최종 급여 집계표의 가로 세로 합계가 일치하지 않으면 그 잘못된 부분을 찾는 역작업은 더욱 수고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직원들이 출근 카드를 찍는 동시에 모든 계산이 완료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드디어 지루한 급여 계산의 반복 작업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런데 그 잉여의 시간이 실제로는 노동자들에게 혜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혜택은커녕 일자리만 사라졌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아니 더욱 바쁘다.  

내가 4차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물결이 다소의 편리 외에 인류에게 저절로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낙관론을 의심해보는 이유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파생적인 그림자 노동의 증가보다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시간을
통제하는 어떤 '권력'이 과학을 무기로 시간 영토를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침투, 확장, 독점할 것이라는 우려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다양한 권력 해체의 역사라면 시간 '권력'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램버트의 말대로 "시간은 인생이다. 일, 돈, 시간, 이 세 가지가 있으니 그중 제일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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