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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너 몇 살이니?"

by 장돌뱅이. 2021. 6. 19.

생일날 거울을 보며 손자친구가 말했다.
"한 살 더 먹었는데 왜 똑같지?"
동생도 있는, '확실한 형아'로서 나이 한 살 더 먹는 순간 어떤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자신이 느끼지 못할 뿐 올해부터 손자에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집 안팎에서 나는 손자의 절대적인 신임과 총애를 받는 최고의 '스타'였다.
놀이터에 나가면 손자에겐 나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했다.
우리 둘만의 놀이에 끼어들겠다는 낯선 친구를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나만 있으면 손자가 구태여 함께 놀 친구들을 아쉬워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친구들에게 밀려 고정 술래를 해주는 식의 보조로만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손자친구는 요사이 알게 된 여자 친구 ◎◎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결혼까지 하겠다고 한다.

"작년 어린이집 △△와도 결혼한다고 했잖아?"
제 엄마가 묻자 손자친구는 어이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엄만 왜 어릴 적 이야기를 묻고 그래?"
손자친구의 복잡한(?) 여친 문제는 내가 관여할 바 아니지만, 그 때문에 나는 또 측근 서열에서 한 단계 물러나게 되었다.
최근에 손자는 폭탄선언을 하였다.

"◎◎이가 매일 우리집에 올 수 있다면 할아버지는 인제 안 와도 돼요."

손자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다른 아이의 나이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손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은 자주 상대방의 나이를 물었다.
"너 몇 살이니?"

 '민증부터 까는'(?) 절차에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형이냐 아우냐, 누나냐  동생이냐 하는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손자의 경우는 동갑의 친구를 만나면 조금 더 반가워했을 뿐이다. 
아주 가끔씩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같이 놀 수 없어'라거나  
'내가 제일 형이니까 너네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해'하는 어린 '꼰대'가 있긴 했다.

아이들은 왜 나이를 궁금해하는 것일까? 

출처 : 다문화가정과 함께 하는 즐거운 한국어


외국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한국어교재(위 사진)에 한 가지 힌트를 얻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나이를 자주 묻는 이유는 '이름을 부르는 대신 나이, 직책에 따라 그에 맞는
호칭과 함께 존댓말'을 하는 연공서열, 장유유서의 문화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친척간 호칭이라던가 항렬, 존댓말의 등급 따위가 복잡하게 발달된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종백숙부, 종형제, 재종형제, 재종질 등의 단어만으로 좀처럼 관계를 파악하기 힘든 친척간 호칭이나
아주높임체, 예사높임체, 예사낮춤체, 아주 낮춤체,  두루높임체, 두루낮춤체 등으로 세분화된 존댓말.)
시나브로 시나브로  아이들도 그런 문화에 젖어들게 된 것은 아닐까?


가정에서의 부모-자식 관계는 보통 그것을 둘러싼 사회구조의 객관적인 문화적 상태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가정에까지 관철되는 그 상태가 권위주의적이고, 경직되고, 위압적일
경우에는 가정에도 억압적인 분위기가 생겨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권위주의적인 관계가
심화되면 자식은 어릴 때부터 배운 부모의 권위를 점차 내면화하게 된다.
- 파울로 프레이리, 『페다고지 (Pedagogy of The Oppressed)』중에서 -


어떤 회사에서는 직책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이름을 부른다고 한다.
한국 본명이 아니라 저마다 새로 만든 영어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나이와 직책이 주는 권위적 분위기가 조금씩 옅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사회적 관계의 산물인 언어가 이 경우는  거꾸로 관계를 변화시키는 도구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와 다문화라는 시대적 상황은 다방면에서 우리가 오래 간직해온 전통을 흔들고 있다.
그것은 장단점을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변화의 문제다.
세상의 많은 다른 일들처럼 전통 역시 완고한 수구가 아니라 진취적인 변화에서 지속적인 생명을 부여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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