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nono스쿨과 고추장떡

by 장돌뱅이. 2021. 6. 29.


오래간만에 nono스쿨에 나갔다. 10개월 만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졸업생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혼자 사는 이웃들에게 전달할 한 끼의 식사를 만든다. 
nono스쿨 재학 중 배운 레시피를 따라 재료와 양념을 계량하고,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간을 보며
그분들과 나눌 관계의 고리를 음식에 담는 활동인 것이다.

오늘의 메뉴는 안동찜닭과  취나물고추장떡, 그리고 뱅어포볶음과 고추소박이.
나는 고추장떡을 맡았다. 밀가루와 부침가루 반죽에 고추장과 된장을 풀고, 취나물과 양파,
오징어를 넣고 섞어서 부침개를 부쳤다.

nono스쿨에서 만든 취나물고추장떡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그외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중에서-



내게 고추장떡이란 음식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아내였다.
결혼 전 강원도에서 교편을 잡았던 아내는 그곳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준 고추장떡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그 때문에 나는 고추장떡이 강원도 고유의 음식이라는 선입관을 갖게 되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밀전병에 고추장을 풀어 부쳐 먹는 것은 특정 지역과 상관없는 우리의 전통 여름철 풍속이라고 나와있었다.)

아내에게 고추장떡은 그 시절의 기억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음식이다.
장래 희망란에 고속버스 안내원이라 적고, 비가 오면 개울물이 불어 등교를 하지 못하던 학생들,
그들과 함께 지지고 볶던 그 맑고 꿋꿋한 가난의 시절들······.

얼마 전 제자 중 몇 명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음성 통화를 원했지만 짓궂은 제자들은 옛 선생님의 늙은 모습을 확인해야겠다며 영상 통화를 고집했다.
전화기 화면 속에 머리숱이 성글고 희끗해져 늙수구레한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세월은 공평하게 흐르는 것이었다.

통화를 끝낸 아내는 그들과 나눈 질박한 맛의 고추장떡을 이야기했다.
음식은 그렇게 우리의 '뼈와 살과 정서'를 구성하며 사랑을 전하는 매개물이 된다.
'배고픔은 어떤 먹을거리로든지 달랠 수가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의 맛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지 않던가.

그동안 내가 몇 번 만들어봤지만 아내의 고추장떡에 대한 갈증을 제대로 해소시켜주진 못했다. 
"당신이 가진 기억 속의 맛이 시간이 흘러서 과장되었기 때문이야.
내가 만든 건 백종원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한 건데 말이야."
나는 부족한 솜씨를 그렇게 변명했다.

조만간 아내를 위해 고추장떡을 다시 한번 시도해봐야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