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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그들만 모르는 단어

by 장돌뱅이. 2021. 7. 6.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는 1945년 9월 7일 더글라스 맥아더 태평양 미 육군 최고 지휘관의 포고령 제1호를 보면, 38선 이남을 점령할 것(will occupy)이라고 명백히 기술하고 있고, 스스로도 점령군(the occupying forces)이라 칭했다.
맥아더는 포고령에서 “일본 천황의 명령에 의하고 또 그를 대표하여 일본 제국 정부와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 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은 점령에 관한 조건(the following condition of the occupation)을 포고한다”고 밝혔다. 포고령 제3조를 보면, “점령군에 대한 모든 저항이나 공공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쓰여있다. 포고령은 국문(국한문 혼용), 영문, 일문본 등 3종류로 돼 있다. 맥아더의 포고령 국문본에도 38도선 이남의 조선지역을 점령함이라고 쓰여있다.


그렇다면 단지 가치중립적인 점령의 의미였을까, 적국 또는 준적국에 항복을 받아낸 뒤 벌이는 적대적 조치의 의미였을까. 이 부분 역시 미군이 조선총독부 행정체제를 잔존시키고, 친일인사들을 등용했다는 점에서 후자에 가깝다는 연구가 많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38도선 이남 군정 책임자인 24 군단장 존 하지 (John Reed Hodge) 중장이 9월4일 자신의 장교들에게 한국이 “미국의 적이며” 따라서 “항복의 조례와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라고 지시했다고 썼다. 커밍스는 “미 군정의 공식 소식통이 후에 ‘정부와 그의 행동은 적국에서의 경험에 의하여 정해졌으며 적대국 내에 있는 군의 지시 및 훈련방침에 따르도록 되었다’라고 보고했다”며 “남한은 적국 영토에 진주한 승자의 적대적 점령하에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 이유를 두고 커밍스는 “오키나와에 있던 점령군 사령부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기존 정책보다도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각색된 설명에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며 “9월 초 맥아더 등은 일본의 기존 행정체제를 활용하기로 결정했다”고 기록했다. 커밍스는 하지 중장이 9월 9일 항복식을 마친 뒤 모든 일인 및 한인에 의해 조선총독부의 기능을 그대로 존속되리라고 선포했다고 주한미군사(HUSAFIK)를 인용해 적었다.

 - 이상 "미디어오늘"의 7월6일 자 기사 발췌 요약-

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조선총독이었던 아베(阿部信行)과 정무총감이었던 엔도(遠藤柳作)에게 미군정청의 고문으로 취임해줄 것을 요청한 적도 있다는 하지는 "내가 일본인의 통치기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현재 가장 효과적인 운용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군정은 민중의 여론을 전혀 돌보지 않고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그냥 등용했다. 이중에는 일제하에 고등경찰로서 민족운동자들을 검거·고문·학살한 반역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미군정은 조선에서 일본군국주의 잔재를 청산할 생각을 전혀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일반민족행위자들을 보호했다. 미군정하의 입법기관인 남조선과도입법 의원이 47년 7월에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 통과시켰으나 이 특별법안은 미군정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끝내 공포되지 않아 법률로서 시행을 보지 못해 일제잔재의 숙청은 실현되지 않았다. 미군정은 이 나라에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를 도입시켰을 뿐 일제잔재를 보존함으로써 장차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짓밟는 무서운 독소들을 남겨놓았다."(송건호의 글 중에서)

한 정치인의 이른바 '점령군' 발언에대해 '국민분열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자 하는 매우 얄팍한 술수'라고 폄하하며 도리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꾀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역사관'이라고  낡은 이념의 색깔을 칠하려는 구태는 지겹다.
무엇보다 미군정 스스로 '점령군'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아니라고 사실은 '해방군' 아니냐고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조금 우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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