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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제 때에 해야 하는 일

by 장돌뱅이. 2021. 7. 10.


70년 대 고교 야구는 우리나라 최고 인기 스포츠 중의 하나였다.
대구가 고향이었던 친구는 서울에 올라와 친척집에 기거하며 대학 입학을 위해 재수를 하고 있었다. 8월에 열리던 봉황대기 대회에  모교 경기가 있던 날, 친구는 학원을 땡땡이치고 야구장에 갔다.

외야석에서 한창 경기와 응원에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쳤다.
친척 어른이었다. 놀란 친구에게 친척은 걱정스러운 투로 말을 건넸다.
”지금 대구에서 너거 아부지 난리 났다. 텔레비전 중계에 니 얼굴이 나왔다고 전화가 안 왔나?“
흑백텔레비전으로 지나가는 중계 화면에서 아들의 얼굴을 알아본 대단한 눈썰미의 아버지는 공부에 매달려야 할 시기에 야구장에 앉아 있는 아들에게 대노를 했다.
한참 뒤에 친구는 이 일을 두고 이렇게 회상했다.
”신나게 깨졌지만 뭐 우짜노? 그땐  거기에 있는 게 제일  중요했는데.  다음 경기에도 또 갔다 아이가?“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 유로 2020에서도 그 친구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8일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잉글랜드는 덴마크를 2-1로 꺾었다.
잉글랜드의 축구팬 니나 파루치는 이 경기를 보러 가기 위해 회사에 거짓으로 병가를 제출했다.
회사에 일할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라 일반 휴가가 승인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골대 뒤에 앉아있던 니나는 동행한 친구와 함께 극적인 승리에 환호했고, 이 모습을 중계 카메라가 잡았다. 문제는 직장 상사가 텔레비전에 비친 그녀를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회사는 그녀의 '축구 사랑'을 이해해 주지지 않았고 니나에 게 결국 해고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니나는 “약간의 후회는 있다. 해고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경기를 보지 못했을 때의 후회가 더 싫었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누구나 밥만으로 살지 않는다. 반드시 어떤 커다란 '말씀'을 기준으로 삼지 않더라도 삶은 매 순간 그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나 해서는 안될 일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운동 경기 '직관'처럼 제때에 하지 않고 지나가버리면 의미 없어지는 일이 또  뭐가 더 있을까?

사랑한다고 말하기, 잘못한 일 사과하기, 베풀어줌에 감사하기, 아픈 사람 다독여 주기, 불뚝성질 참기,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에도 즐겁기······. 하나 같이 쉬워 보이는데 잘 안 되는 일들이다.
그래서 삶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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