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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하종오 시집『제주 예맨』

by 장돌뱅이. 2021. 7. 15.


아래 인용 시는 모두 『제주 예맨』에서 옮긴 것이다.

난민은 본국에서 발생한 무력분쟁이나 박해로 인해 본국을 떠나 외국으로 탈출하여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박해의 위험이나 생명의 위협을 당할 수 있어 국제사회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2018년 5월 제주에 6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들어오면서 우리 사회는 난민 수용 찬반의 입장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예멘 난민 찬반 집회를 열었다고 했다 / 차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 인도에서 / 제주로 온 예멘인들을 난민으로 /
인정하지 말라는 구호와 / 인정하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 한 문제에 대하여 / 시민이 찬반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면 / 건강한 사회라고 고개 끄덕이다가 /
난민 문제에 대하여 / 반대 집회 참가자가 찬성 집회 참가자보다 / 그 수가 많다 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
더구나 젊은이와 여성이 대다수, / 여론 조사도 그렇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일제식민지 시대부터 독재정권 시절까지 / 탄압을 피해 이 나라를 떠난 한국인들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 글로벌 시대에 /
내전을 피해 이 나라를 찾아온 예멘인들은/ 속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다음 찬반 집회가 열리는 날 / 찬성 집회에 참가해야겠다
-「찬반집회」-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 484명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2명,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사람은 412명이었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4%이다.
난민 인정자와 인도적 체류자를 포함한 보호율도 11.5%에 불과하다.
이는 유럽연합(EU) 국가의 난민보호율 60.8%에 비해 현저히 낮을 뿐 아니라
전 세계 난민 보호율 41.3%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하종오 시인이『제주 예맨』서문에서 
"예멘 난민에 관한 시가 아니라 예멘 난민 신청자에 관한 시들"이라고 굳이 구분을 한 이유일 것이다. 


가짜 난민을 가려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 / 제주에 온 예멘인들에겐 모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난민은 제 나라에선 생명에 위협을 느껴 / 날마다 어울려 놀던 햇볕과 그늘을 놔두고 /
언제난 걸어 다녔던 길과 동네를 놔두고 / 늙어 죽을 때까지 할 일거리와 일자리를 놔두고 /
다른 나라로 피신한 사람들, /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도 오로지 살기 위하여 / 
날마다 햇볕과 그늘과 어울려 놀아야 하고  / 언제나 길과 동네를 걸어 다녀야 하고 / 
늙어 죽을 때까지 일거리와 일자리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나 금세기는 누가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세금을 내면 거주할 수 있는 /
세계시민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나로서는 / 제주에 온 예멘인들 가운데서 /
일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을 /가짜 난민으로 가려내 추방해야 한다는 말은 /
대단한 어불성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짜 난민」-


우리나라는 유엔 난민 기구의 ‘난민 협약’과 ‘난민 의정서’에 비준하였고,
2012년 2월 아시아에서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해 2013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렇듯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지만 난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수용태도는 여전히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난민 문제에 부정적인 입장은 대체로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하나는 내국인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범죄에 대한 우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주민들이 담당하는 일자리는 내국인들이 회피하는 취약 부분이라
도리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된다. 


김일국 씨의 아버지는 한국이 가난해서 / 중동에 건설노동자로 나가 / 돈 벌어왔다//
김일국 씨의 아버지가 그 돈으로 / 집 장만하고 결혼하고 / 자기를 늦둥이로 낳아 가르쳤다는 걸 / 그는 몰랐다//
김일국 씨의 아버지가 못살던 시절을 아예 잊어버리고는 / 처음부터 잘살았다는 행세해도 /
아무렇지도 않은 나라 한국으로 / 중동에서 젊은 아랍인들이 난민으로 들어오자, / 
일자리가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또래들과 함께 / 그는 강제 출국을 청원했다 //
물론 김일국 씨는 미취업자여도 / 애당초 젊은 아랍인들이 다닐 수 없는 직장을 선택해야 하는 고학력자라는 걸/
그의 아버지는 자랑스러워하면서 / 자신이 돈 벌려고 중동에 갔다가 온 이력을 감추고 /
늦둥이 자식의 행동거지에도 눈감았다
-「중동」- 


또한 공식 통계에 나타난 외국인 범죄율은 2016년 기준 2.14%로 내국인 3.9%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외국인 중에서도 이슬람권인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는 미국·캐나다보다 범죄율이 낮으며 범죄율 최하위권이다.
통계에서 보듯 편견과 오해를 벗어나면 그들은 밥 먹고 일하고 사랑을 나누는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공자가 살던 그 시대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 그중에 스승이 한 명 있었다던가 /
내가 사는 이 시대엔 세 사람이 한곳에 모이면 / 그중에 나쁜 사람이 한 명 있다고 /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심하게 말해서 / 한국인이 500여 명 사는 동네에 가면 /
나를 비롯한 여러 명이 나쁜 사람일 수 있고 / 나를 뺀 모두가 착한 사람일 수 있다 /
따라서 예멘인이 500여 명 사는 동네에 가면 / 누군가를 비롯한 여러 명이 나쁜 사람일 수 있고 /
누군가를 뺀 모두가 착한 사람일 수 있다 /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 예멘에서 온 무슬림이라고 해서 /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것은 / 500여 명이 사는 동네에 가면  / 오직 그 자신이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고 /
나머지는 선량할 수 있다는 걸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 한국인이든 예멘인이든 / 
500여 명이 사는 동네에 가면 / 나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쁜 사람 착한 사람」- 
 

우리 사회는 특히 무슬림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한 손엔 칼, 한 손에 코란' 하는 식의 극단적 이분법으로 무장된 테러 범죄 분자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언론 보도를 통해 우리가 접하는 무슬림의 소식이 대부분 그렇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경전을 '코란'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영어권 문화의 표현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낭송' 혹은 '신의 말씀'이라는 의미를 지닌 "꾸란"이라고 한다.

90년 대 초 회사 일로 인도네시아에 주재한 첫날, 현지인 직원에게 '코란'을 한 번 보자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가 가져온 것은 자카르타 포스트라는 현지 영자 신문이었다.
코란은 인도네시아어로 신문이었던 것이다. 


몇 해 전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을 다녀오면서 꾸란을 샀다.
3분의 1쯤 읽다가 솔직히 어려워서 그만두었다. 연말까지 다시 통독을 시도해볼 생각이다.


어렸을 적엔 부모님의 권유로 성경을 읽었다 / 젊었을 적엔 스승의 권유로 불경을 읽었다 /
아무도 권유하지 않은 코란을 / 늙어서 읽어야 할지 망설인다//
성경과 불경의 경구가 / 훤히 보이는 나이가 되고 보니 / 서로 다를 바가 별로 없는데 /
코란도 마찬가지이리라고 / 예단하면서 읽지 않는다면 / 언어도단이겠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 바르게 살아야 하는 법을 / 성경과 불경에서 배워서 / 지금껏 살아낸 것이다 /
앞으로 더 살아내기 위하여 / 나는 사람이기에 / 나와 다른 사람이 읽는 경전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좀 늦었어도 코란을 읽고 / 자식들에게 일독을 권유해야겠다
-「경전」- 


한국으로 유입되는 난민과 이주민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존립의 차원에서 다문화의
불가피함을 강조해온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해 좀 더 진취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한국에 온 예멘인들이 쉽사리 / 예멘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 적에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은 노인은 많고 /
그 자손은 줄어드는 한국에서 / 예멘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 예멘계 한국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
아라비안 나이트를 재창작하여 옛이야기로 들려주면 좋겠다 예멘에서 일어났던 전쟁이야기에선 /
부상당한 어른들과 굶주린 아이들을 구하는 주인공으로 /새로운 알라딘을 등장시키면, /
한국에서 살아온 예멘인들을 이야기에선 / 힘없는 이웃을 도와주는 주인공으로 / 이씨 성을 가진 새로운 알리바바를 등장시키면, /
예멘인들과 한국인들 사이가 좋아진 이야기에선 / 예멘인들이 한국 땅에 심어 키운 모카커피나무에서 /
원두를 따서 한국인들에게 나눠주는 주인공으로 / 박씨 성을 가진 새로운 신드바드를 등장시키면 /
예멘계 한국아이들이 듣고는 / 정주민 한국아이들에게 전할 적엔 / 스토리를 늘이고 줄이고 / 등장인물을 보태고 빼어서 /
한국판 아라비안나이트를 재창작한다고 믿는다 / 예멘계 한국아이들이든 정주민 한국아이들이든 /
그중에 걸출한 입담꾼들이 있어 / 재미가 한층 더 나도록 서로 다투어 꾸며서 옛 이야기를 풀어내면  /
너무나 다양해진 한국판 아라비안나이트가 / 수십 년 수백 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
세계 아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 / 각국어로 번역된 세계 명작으로 출간되기를 바란다. 
-「한국판 아라비안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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