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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3 - 청귤청 만들기

by 장돌뱅이. 2021. 9. 27.


제주도에서 9년간 귀양살이를 한 추사 김정희는 자신이 살았던 집을 귤중옥(橘中屋)이라 불렀다.
귤나무 속에 있는 집이라는 뜻이겠다.
귤은 오직 제주도의 전유물이고 겉과 속이 다 깨끗하고 우뚝한 지조와 꽃답고 향기로운 덕이
다른 것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어서 당호(堂號)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사의 눈에 아름다운 서정으로 가득한 귤은 당시 제주 백성들에겐 고통을 가중시키는 진상품 중의 하나였다.
육지의 중앙 권력은 귤의 생산·운송·분배의 전 과정을 관리하고 통제했다.
귤나무에 열매가 맺히면 꼬리표를 달고 숫자까지 기록하였다. 백성들은 열매가 없어지면 엄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때문에 백성들은 귤나무를 더 심으려고 하지 않았고, 더운물을 끼얹거나 송곳으로 구멍을 내어 죽이기도 했다.

"중앙 권력은 귤을 공납 받고 이를 적절하게 분배하는 장치를 통하여 과일을 둘러싼 권력의 아우라를 연출해냈다.
(···) 귤이 한양에 도착하면 나라에서는 큰 경사가 벌어졌다. 귤이 진상되면 종묘에서 제사부터 지낸 다음,
각 전각과 가까이 모시는 신하에게 나누어 주었다. 귤이 대궐에 들어온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성균관과
서울의 동서남중 네 개 학교의 유생에게 감제 또는 황감제(黃柑製)란 특별과거를 실시하고 감귤을 나누어 주었다."(주강헌의 글)

 

 

 


지금 제주도 서귀포는 귤밭이 지천이다. 모든 집과 마을이 귤나무 속에 있는 '귤중옥' 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수고로움이 가득한 노동 현장이겠지만 다녀가는 여행자인 아내와 나의 눈에는 풍요롭기 그지없어 보인다.

단기 제주살이의 근거지로 인연을 맺은 숙소의 주인도 자그마한 귤밭을 정원처럼 가지고 있다.

인심 좋은 주인은 푸른색의 귤을 따서 청귤청을 담가보라며 우리 부부를 귤밭으로 초대해 주었다. 
귤밭에 커피까지 준비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던 주인은  극조생 감귤과 조생 감귤, 노지 감귤과 하우스감귤 등을 설명해 주었다.

아내도 나도 직접 귤을 따는 일은 처음이어서 모기에게 물리는 일 따윈 개의치 않고 신이 났다.


 

 


귤청을 만드는 일은 여타의 청(淸)을 만드는 일처럼 간단했다.
귤을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닦은 후 얇게 썰어서 1:1 무게 비율로 설탕을 섞으면 된다.
갑자기 생긴 청귤에 부랴부랴 마트에서 빈병을 사 오며 아내는 사위가 좋아할 거라며 기대에 부풀었다.

서울에서 자란 내게 70년 대 초반까지 귤은 귀한 겨울철 과일로 기억된다. '미깡'으로 부르던,
따뜻한 색감에 촉감도 부드러운 귤을 어머니는 먹고 난 뒤 껍데기까지도 모아서 차로 끓여 주시곤 했다.
이번에 만든 청귤청도 얼마 동안 발효를 시키고 나면 따끈한 물을 넣어 차로  마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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