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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4 - 옥상에 빨래 널기

by 장돌뱅이. 2021. 9. 30.

 

 


밤 사이 비가 내리더니 날이 밝으면서 점차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창밖을 가리던 칙칙한 구름이 한라산 꼭대기로 몰려가자 강렬하고 눈부신 햇빛이 옥상 가득히 쏟아져 내렸다.
문득 햇빛이 아깝다는 생각에 서둘러 이불과 옷 빨래를 가져다 널었다.
숙소에 건조기가 있지만 제주의 햇빛과 바람에 댈 게 아니다.
빨래는 오래지 않아 바짝 마르고 햇볕을 가득 품어 뽀송뽀송해질 것이다.

옥상에 올라가 메밀 베갯속을 널었다
나의 잠들이 좋아라 하고
햇빛 속으로 달아난다
우리나라 붉은 메밀대궁에는
흙의 피가 들어있다
피는 따뜻하다
여기서는 가을이 더 잘 보이고
나는 늘 높은 데가 좋다
세상의 모든 옥상은
아이들처럼 거미처럼 몰래
혼자서 놀기 좋은 곳이다
이런 걸 누가 알기나 하는지
어머니 같았으면 벌써
달밤에 깨를 터는 가을이다

-  이상국, 「옥상의 가을」-



내친김에 창문을 활짝 열고 방과 거실 대청소를 하였다. 
사는 일엔 늘 먼지가 앉고 머리카락이 떨어지고 얼룩이 지기 마련이다. 
있어야 할 것과 사라져야 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청소는 일상이면서 일상을 정화한다.
비록 잠시일지라도 마음이 개운해진다.

오늘은 외부 일정을 접고 집에 머물기로 했다.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요즈음 뜬다는 넷플릭스의『오징어 게임』을 보며 뒹굴 것이다.
청소가 일상에 그러하듯 멈춤도 여행의 일부이다. 그리고 여행에 새로운 활기를 더해준다.
주일에서 길어야 10일 정도의 짧은 여행만 하다가 한 달 동안 '살아보기'를 하니 비로소 멈춤이 가능하다.
아내는 한 달만으론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림없다며 '조금 긴 여행'일뿐이라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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