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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6 - 버스여행과 제주말

by 장돌뱅이. 2021. 10. 4.

 

 

제주에서 한달살기를 앞두고 차 문제를 생각해야 했다.
차가 있으면 여행 중 이동이 당연히 신속·편리할 것인 데다가 필요한 물품을 차 안에 함께 실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제까지 제주 여행 때마다 사용했던 렌터카 비용이  코로나 여파로 최근에 급등했다지 않는가.

제주도에 차를 가져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를 몰고 남쪽으로 내려가 목포나 여수, 완도 등지에서 차와 함께 배를 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대행업체에 의뢰하여 차를 배편으로 보내고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방법이다.
차는 제주항이나 성산포항 중 원하는 곳에서 찾으면 된다. 성산포 도착 가격이 더 저렴하다.

아내와 한동안 갑론을박 하던 끝에 이번 여행은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제주도를 버스로 여행하는 일은 사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터였다.
다만 이제까지의 여행이 일주일 미만의 짧은 여행이라 효율적인 면에서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이다.
이번에는 한달이라는 제법 긴 시간이니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느긋함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 여행을 앞두고 읽는 책 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제주도에 없는 것들의 빈자리를 제주도에 있는 것들로 채우라."
어디 제주도 뿐이랴. 세상의 모든 여행을 위한 경구이고 확대하면 삶에도 적용될 수 있으리라.

어차피 완벽한 장점만 있는 어떤 선택은 없는 법이다. 
버스여행의 부족함은 버스 여행의 장점으로 상쇄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생각만큼 느긋하거나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날은 더웠고 버스는 기대만큼 자주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덕분에 버스의 도착 시간을 미리 알 수 있어 편리했지만
그것은 첫번째 버스에 해당되는 말이고 환승을 할 경우 다음에 오는 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복불복이었다.
다만 애초부터 많이 다니고 많이 보려는 욕심을 부릴 수 없는 탓에 일정이 단순해지고 여유로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나쁘지 않았다. 교통카드는 필수였다.


매일 버스를 타게 되면서 버스 안 제주인들의 대화를 가까이서 듣게 된다.  
카페나 식당, 여행 안내소의 사람들은 여행자를 배려해서인지 표준말에 가까워 문제가 없다.
행인에게 길을 물어도 질문과 답변의 주제가 명확하니 언어 소통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제주민들, 특히 나이드신 분들끼리의 대화는 바로 옆에서 귀를 기울여 들어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유홍준 교수는 제주도의 세 가지 보물로 자연과 민속, 그리고 언어를 꼽았다.
각 지방 고유의 사투리는 표준어로 대체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보존하고 육성해야 할 문화적 자산이다. 
제주말은 삼별초와 몽고, 그리고 일본말의 영향을 받아 오늘에 이르렀으며,
특히
표준어에서는 사라진 옛말의 원형이 남아 있어 고어 연구의 실마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제주말에는 '아래아'의 음가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아래아'는 '아'와 '오'의 중간소리로
ᄃᆞᆯ(月), ᄆᆞᆯ(馬), ᄇᆞ람(바람), ᄃᆞ리(다리) 등이 그 예이다.
거두절미의 생략을 한 특징으로 한다는 제주말 중 재미있는(어려운 ) 말 몇 가지를 책에서 옮겨본다.

강 봥 왕 밥 먹으라(가서 보고 와서 밥 먹으라),
폭삭 속았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속솜허기로(비밀로 하기로),
지꺼지우다( 신납니다), 예 말 물르쿠다(말 좀 묻겠습니다)


다음은 제주도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가르칠 때 하는 말이다.

"홈생이 말라. 촘람생이질 말라. 간세 말라. 느링테질 말라. 요망진 체 말라.
거들락거리지 말라. 노미 모심 아프게 호지 말라. 경해사 호는 일이 펜안해진다."
(어리광부리지 마라. 경솔하게 나서지 마라. 게으르지 마라. 느림보가 되지 마라.
꾀부리며 잘난 척 마라. 거만하지 마라. 남의 마음 아프게 하지 마라.
그래야 하는 일이 편안히 잘 된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한려수도와 제주』에서 옮김 -


"무신 거예 고람 신디 몰르쿠게?"(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지요?)
'경해도 고만히 생각호멍 들으민' 조금씩 알아진단다.
물론 한달살기로는 어림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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