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올레길 7코스를 따라 강정마을을 지날 때 이제까지 올레길이 주었던 '제주스런' 고즈넉함과
평화로움은 사라지고 문득 '아, 그렇지! 강정마을!' 하는 긴장 섞인 깨달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일상에 파묻혀 어느덧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단어들 - 생명과 자연과 평화.
한 때 우리 사회에 그런 단어들의 총체는 강정마을이었고 구럼비 바위였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들꽃 한 송이만도 못하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생명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2011년 조용한 어촌마을 강정에 갑자기 거대한 군사 기지 건설을 위한 철조망이 둘러쳐졌다.
일 년 뒤엔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와 처절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십 만년 동안
그 자리에 있어온 폭 1.2km의 거대한 구럼비 바위가 폭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더불어 연산호 군락과 멸종위기인 붉은 발말똥게, 층층 고랭이 등도 거처를 잃게 되었다.
오래지 않아 이지스 구축함이라던가, 잠수함, 강습상륙함, 핵항공모함 같은, 이름만으로 공포스러운
어떤 것들이 '평화'와 '상생'의 이름으로 강정의 바다 위를 떠돌았다.
하지만 누군가 아직도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5248일째나 이어가고 있었다.
정부가 바뀌면서 주민들에 대한 구상금 청구는 취소되고, 사면 조치와 사과가 있었다지만 길가에 내걸린
현수막과 설치물들은 강정마을의 아픔과 상처가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진행 중임을 웅변하고 있었다.
송강호 씨가 누구일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아이티 등 많은 나라를 돌며
평화운동과 긴급구호 국제 활동을 벌여온 활동가이자 신학자라고 한다.
강정마을에 온 이래 그는 구럼비 바위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를 해 왔다.
발파 이후에는 구럼비가 보이는 방파제에서, 그리고 기지가 완공된 이후에는 기지 정문에서 기도했다.
2020년 3월 구럼비 발파 8주년을 맞아 수차례 기지 내에 남아 있는 구럼비 흔적을 찾아 기도를 올리겠다는
신청을 해군이 거부하자 그는 철조망을 뜯고 기지 안으로 들어가 평화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군용 시설 손괴죄로 체포되어 올여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되었다.
"강정아, 너는 한국에서도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에 평화가 시작되리라."
2011년 9월 8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이었던 강우일 주교는 강정사거리에서 봉헌된 미사에서
강정을 성경 속 예루살렘에 빗대어 강론을 했다.
주교의 말을 염원과 희망으로 곱씹으며 강정마을의 바뀐 풍경 속을 스산한 기분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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