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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2 - 수평선

by 장돌뱅이. 2021. 9. 25.

 

 

 

 



저 빨랫줄 참 길게 눈부시다

태양을 널었다가
구름을 널었다가

오징어 떼를 널었다가
달밤이면 은빛으로 날아다니는 갈치 떼를 널었다가

옛날에는 귀신고래도 너끈하게 널었다는

그래도 아직 단 한 번 터진 적 없는
저 빨랫줄|

라산과 백두산이
가운데쯤 독도를 바지랑대로 세워놓고
이쪽, 저쪽에서 팽팽하게 당겨주는

참 길게 눈부신
저, 한국의 쪽빛 빨랫줄

- 배한봉 「수평선」-


호쾌한 상상이다.
수평으로 가득한 직선 위에 태양을 널고 구름을 널고 오징어 떼와 갈치 떼를 널어 보다가
마침내는 독도쯤에 바지랑대를 세우고  한라산과 백두산을 잇는 상상.

제주도에는 저 아득한 수평선 넘어 어딘가에 하얗게 솟아 있다는 상상 속 낙원, 이어도의 전설이 있다.
그 섬으로 간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제까지 갖지 못한 복락을 누리기 때문에 다시는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현실의 힘겨운 노동과 가난,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바닷속으로 생을 마감해버린 겨레붙이에 대한
막막하고 처절한 그리움의 몸부림이 승화되어 이어도를 만들었으리라.  
그렇듯 상상은 현실을 잊게 하는 단순한 공상이나 유희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는 힘이고, 
때때로 현실을 넘어 구원에 이르려는 투쟁이 되기도 한다.  

'길게 눈부신, 쪽빛 빨래줄'을 바라보며 아내와 오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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