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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8 - 식당밥

by 장돌뱅이. 2021. 10. 7.

앞서 말한 대로 제주살이 전반부 동안 매일 점심 한 끼는 식당밥으로 해결했다.
올레길 걷기나 기타 다른 일정의 소화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의 식당들에서였다. 
식당은 인터넷을 검색하여 고른 곳도 있고 지나다가 우연히 들린 곳도 있다.
우연히 들린 곳도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고 기획되어 이미 인터넷에 올라 있었다. 
나 혼자 즐기는 숨은 비경이라던가 '맛집'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매트릭스』 속 같은 세상이다.

어쩔 수없다. 숱한 정보의 바닷속에서 나의 기호와 맞는 곳을 선택하는 수밖에.  
맛깔스러운 식사 한 끼는 여행의 만족도를 높인다.


1. 남원흑돼지 연탄골목

 

식당 이름이 길고 특이하다. 첫날 저녁에 숙소 주변을 마실 가듯 천천히 걷다가 들린 곳이다. 
"제주도에도 연탄 공장이 있나요?" 주인에게 물어보니 육지에서 '수입'한 것이란다.
제주도에는 흑돼지구이 식당이 많다. 여행을 할 때마다 한 번씩은 흑돼지를 먹게 되지만 
식당 마다 큰 차이가 없이 맛이 고르다. 고기는 물론, 비계나 껍질까지도 찰지고 고소하다. 
제주도에선 구태여 흑돼지가 아닌, 마트에서 산 일반 돼지고기도 질과 맛이 훌륭했다.

다만, 특별하게 맛의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오로지 흑돼지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김치찌개의
가격이 조금 높은 건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서울의 이름난 김치찌개 집의 맛과 가격의 이른바 가성비를
비교하면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이건 이 식당만의 문제가 아닌 듯했다.


2. 덕성원

꽃게짬뽕

 

'소 한 마리는 몰래 먹을 수 있어도 게 한 마리는 몰래 먹을 수 없다'던가?
게 특유의 향 때문이다. 게를 짬뽕에 넣은 이유도 같을 것이다.
덕성원은 창업주가 일제강점기에 제주도에 정착하여 문을 연 이래 3대에 걸쳐 이어져 온 오랜 식당이라고 한다.
중문과 제주에도 분점이 있다던데 우리는 이중섭미술관 근처 있는 본점에서 먹었다.
알맞게 바삭한 탕수육도 좋았다. 탕수육을 먹을 때 멀리 있는 손자가 눈에 밟혔다.
 

3. 정희네해물탕

제주올레여행자센터 옆에 있다.
양념을 많이 하지 않고 끓일 때 해물에서 우러나오는 육수로 저절로 간을 맞춘다고 직원은 설명했다.
심심한 듯 개운한 맛. 그걸 신선한 맛으로 믿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4. 다도

 

 

전복물회

 

전복비빔밥

올레길 7코스 중간 이어도로에 있다. 한달살이 전반 동안 가장 만족했던 식당이다.
메뉴가 전복물회, 전복비빔밥, 전복죽, 세 가지로 간단하다.

물회와 비빔밥은 맛 이전에 현란한 색깔로 눈을 사로잡는다. 식당 안팎 분위기도 깔끔하여 음식과 잘 어울린다.


5. 공천포식당

다른 장소에서 제주도 한달살이를 하고 있는 부부와 함께 전복물회를 먹었다. 
된장 맛과 신 맛의 국물은 강렬했지만 이어지는 뒷맛의 깔끔함에선 위의 "다도"에 못 미쳤다.


6. 안여어렝이

 

올레길 4코스 남원 포구 근처에 있다. 어렝이는 물고기 이름이고 안여는 인근의 바다를 지칭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전어물회와 도다리물회를 먹었다. 음식 맛은 나쁘지 않았으나 권태로운 식당 분위기가 흠이었다. 
맛은 그릇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화학적 결합에서 나온다.



7. 위미다온국밥

올레길 5코스 위미항에 있는 식당이다. 사진은 감자탕이다.
깨끗한 실내와 단정한 서비스가 자극적이지 않고 은근한 음식의 맛에 신뢰감을 주었다. 


8. 대도식당

김치와 미나리와 콩나물의 조합인 김치복국의 국물이 속을 시원하게 적신다.
서귀포성당 근처 천지연폭포 입구 가까이 있다.


9. 강정해녀의 집

겡이는 게를 의미하는 제주도 말이다. 작은 게를 갈아서 만든 겡이죽에선 구수한 맛이 났다.
벽에 가득한 해군 장병들의 낙서가 군사기지가 들어선 강정의 상황을 보여주는 듯했다.  


10. 고향생각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근처에 있다. 할머니 혼자서 운영한다.
근데 "할머니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시려면 힘드시겠어요?" 하니, "할머니 아닌데요." 하신다.
"아! 죄송합니다. 사장님." 놀라서 수습하려 하자 이번엔 "사장님도 아닌데요." 하신다.
"그럼 이모님······" 하다가 웃고 말았다. 결국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지 묻지 못했다.

돼지뼈와 고기로 우려낸다는 육수에 저어하던 아내도 첫술을 뜬 뒤로는 맛있게 먹었다.
'이모님'이 만든 파김치와 배추김치가 국수와 잘 어울렸다.


11. 수두리보말칼국수

제주도 말로 보말은 고둥을 총칭한다. 보말칼국수와 성게전복죽을 시켜 아내와 나누어 먹었다.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자 명단에 5팀 이상이 있으면 미련 없이 돌아서려고 했는데 다행히 4번째여서 기다렸다.
바쁜 중에도 직원들의 세심한 서비스가 좋았다.



12. 고수목마

 

 

 

오랫동안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말고기를 마침내 맛보았다. 올레길 3코스와 4코스가 만나는 표선에 있다.
코스 요리를 시키니 육회, 구이, 스테이크, 찜 등이 나왔다. 육질이 질기지 않을까 했지만 매우 부드럽고 특별한 냄새도 없었다.
구태여 소고기나 돼지고기와 맛의 우열을 비교할 필요 없이 제주도를 여행한다면 한 번 정도는 경험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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