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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10 - 머체왓숲과 사려니숲

by 장돌뱅이. 2021. 10. 11.

<머체왓 숲길>

 

 

 

 

머체왓숲을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니 노선버스로는 갈 방법이 없다.
택시를 불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제주 북쪽 해변 마을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있는 지인한테서 연락이 왔다.
함께 머체왓숲을 가자는 우리 부부에겐 행운스런 제안을 했다. 그는 서울에서부터 차를 가지고 와 있었다. 

서귀포시 한남리에 위치한 머체왓은  돌(머체)이 많은 밭(왓)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래 살던 주민들이 4.3 때 피해를 입으며 마을 자체가 사라졌다가 2012년 숲길이 조성되어
머체왓이라는 이름이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숲길에 들어서기 직전 나지막한 푸른 언덕과 만나게 된다. 탁트인 언덕 위에는 나무 두세 그루와 작은 평상과 의자가 있다. 
멀리 한라산의 모습이 아스라히 보이는  예사롭지 않은 풍경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모이게 하는 곳이다.

이 언덕을 왼쪽으로 끼고 얕은 돌담을 따라가면 시원스레 쭉쭉 뻗은 삼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머체왓 숲길은 대략 6.7km로 천천히 3시간 정도 걸으면 출발 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날은 뜻밖의 사정이 생겨 한 시간 정도만 걸을 수 있었다.
아쉬움은 여행의 일부이고 다음 여행의 이유가 된다는 말로 위로를 삼기로 했다.


<사려니숲>

지인 부부와 함께 걸은 첫 사려니숲길 


머체왓숲을 다 걷지 못하고 돌아 나오게 되자 지인은 우리를 사려니숲으로 안내했다.
이미 머체왓숲에서 시간을 소비한 터라 사려니숲은 들머리만 짧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하지만 너무 좋았기에 걷지 못한 나머지 길에 대한 기대는 더 커졌다.


며칠 뒤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내와 둘이서 다시 사려니숲을 찾았다.
다행히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이었다.

두 번째 사려니 숲길

 

 


사려니숲은 이름부터가 참 예쁘다. 가만히 불러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신성한 숲'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숲 안'을 의미한다고 한다. 어느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합쳐서 '신성한 숲 안'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숲은 신성하기 마련이지만 버스 정거장에 내려 숲 속으로 몇 발자국 걸어 들어가면 누구나
나의 그 '사려니'란 의미에 동의를 하고 싶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구분할 수 있나요?" 사려니숲을 걸은 첫날 지인이 물었다. '나무맹'인 내가 구분할 리가 없다.
하지만 알고 모르고와 상관없이 사려니숲에선  "아!" 혹은 "와!" 하는 감탄사가 걸음마다 저절로 나왔다.
마스크로 가린 코와 입으로는 긴 들숨과 날숨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했다.

 

 


사려니 숲길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존지역이다. (···) 전형적인 온대산지인 사려니 숲길은
천연림으로 졸참나무, 서어나무가 우세하게 자치하고 있고, 산딸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등이 자생
하고 있으며 산림녹화사업으로 심은 삼나무, 편백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서어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은 땅이 안정되었다는 의미라니 이 천연림은 오래도록 이 모습을 지닐 것 같다. (···) 사려니 숲길의
식생은 78과 254종이 분포하고 있고 환경부가 지정한 보호종인 놀, 제주족제비, 오소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천연기념물인 참매, 팔색조, 삼광조, 소쩍새, 황조롱이 등의 조류와 파충류 등이 서식하고 있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 중에서 -

 

 

 


목재 데크길을 벗어나자 흙길이 나왔다.
흙길의 폭은 넓었지만 좌우로 이어지는 숲은 깊어 햇살이 좀처럼 바닥까지 내려앉지 못했다.
흙과 나무, 그늘과 바람, 그리고 적막이 깔린 길에는 새소리와 아내와 나의 발자국 소리만 크게 들렸다.
가고 싶은 만큼 걸었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필요가 없는, 아니 목적지가 있을 리 없는 길이었다. 

그렇게 신성한 숲길을 걷듯 느릿느릿 삶에 여백을 키우며 살고 싶다.
바쁜 것이 능력을 증명하는 시간은 (올 리도 없지만 설혹 다시 온다하더라도) 이젠 추억으로 묻고 손을 흔들어야 할 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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