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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11 - 내 손자, 내 친구들

by 장돌뱅이. 2021. 10. 12.

비슷한 시기의 첫째 손자(왼쪽)와 둘째. 붕어빵이다.

 

'육짓것'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 섬사람들이 육지 사람들의 못마땅한 행태나 그들이 가져온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나타내는 표현일 것이다.
육지 사람이라거나 육지 문화와는 어감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반대의 경우로 '섬것'이라는 말도 마찬가지겠다.)


제주 여행 전 아내와  일상 속 걱정, 불안, 불만, 원망 같은 구질구질한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까지를 '육짓것'으로 정리했다. 그것들 일체를 장롱 서랍 속에 넣어 두고 앞으로 
한 달어치의 제주 여행만을 트렁크와 머릿속에 담아 가자는데 의기투합했다.  


실제로 제주에 와서 거의 그렇게 되었다.
'육짓것'들을 까맣게 잊고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지냈다.  

의도적으로 노력한 것이 아니라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이 저절로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바다는 늘 골목 끝에 떠있거나 올레길 옆에서 출렁였고, 아니면 버스 창문 너머로도 펼쳐져 있었다.
살풋한 바람은 머리 속 잡념들을 살랑살랑 날려보냈다. 

딱 한 가지, 장롱 속에 넣어둘 수 없는 일이 있다. 바로 손자들이다.
거의 매일 영상 통화로 만나긴 하지만 살을 부비지 않는 만남은 갈증만 더할 뿐이다.
첫째는 매일 하루의 일상을 설명했고 유치원생답게 말로 짓궂은  장난을 걸었고,
둘째는 곤지곤지라던가 그림카드 고르기 등 날마다 일취월장의 개인기를 보여주었다. 

 


아내는 경치 좋은 곳을 방문할 때면 그곳이 손자들도 걸을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를,
음식을 먹을 때면 손자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습관적으로 구분하였다.

첫째는 통화를 할 때마다 묻는다.

"아직도 제주도에요?"
"언제 한국에 와요?"

비행기로 오고 가는 제주도를 첫째는 먼 외국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다.
질문엔 한국에 와야 빨리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첫째 나름의 의미와 소망을 담겨있는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답을 얼버무린다. 한 달의 헤어짐은 어린 친구에게 너무 긴 시간이다.

첫째와 나는 만날 때마다 우선 서로 꼬옥 안기부터 했다. 우리는 그걸 '참기름'이나 '쌔서미'로 부른다.
힘을 주어 안으면 정말 참기름처럼 고소한 느낌이 오감과 온몸으로 배어든다.

어제저녁 손자가 말했다.
"핸드폰을 꼬옥 안고 쌔서미를 해 봐요."
나는 마음이 저려왔다.
한달살이가 끝나가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좋아지는 단 하나의 이유다.
영상으로 카드놀이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첫째를 위해 자장가를  읊조려 보았다.


불러라, 가만, 가만, 가만히
속삭이듯, 자장가를 불러라.
하늘 위 말없이 흘러가는
저 달의 노래를 배우듯.

달콤하고 부드러운 노래
자갈돌 위를 흐르는 샘물처럼
보리수 주위를 도는 벌들처럼
윙윙, 소곤소곤, 졸졸.

-  클레멘스 브렌타노,「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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