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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13 - 따라비오름과 머체왓숲

by 장돌뱅이. 2021. 10. 15.

제주살이를 하고 있는 부부와 함께 따라비오름을 가기로 했다. 지난 번에 머체왓숲과 사려니숲을 걸은 부부였다.
그런데 전날부터 시작한 비가 아침까지 그치지 않았다.
부슬부슬 내리는 정도지만 바람도 있어 아무래도 오름을 오르는 건 무리로 생각되었다.
대신에 식사를 하고  창밖 풍경이 괜찮은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는 게 좋겠다고 아내와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한 시간쯤 운전을 하고 우리 숙소에 도착한 부부는 예상과 달리 적극적이었다.
"가야죠. 제주도에서 이 정도 비야 뭐··· 비옷 입고 가면 ··· "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겠다. 차가 없어 부부의 차에 동석을 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궃은 날씨를 무시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제시하기가 저어했던 참이었다.
간단히 아점을 먹고 따라비오름으로 향했다.



< 따라비오름 >
제주도는 바람, 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고 한다지만 옛이야기이고 이제는 특별히 여자가 많은 섬이 아니다.
2020년 4월 기준 통계를 보더라도 제주도 전체 인구 670,595명 중 337,119명(50.3%)가 남자이고
333,476명((49.7%)이 여자로  성비가  비슷하다.
이제는 여자 대신에 '오름'을 넣어 바람, 돌, 오름의 삼다로 했으면 싶다.

제주도의 '오름'은  300곳이 넘어 한 섬이 갖는 기생화산의 수로는 세계에서 으뜸이라고 한다.
오름은 어미닭인 한라산의 품에 깃든 병아리 같기도 하고,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작은 한라산들 같기도 하다.
오름들로 한라산의 모습이 더 푸근해지고 아기자기해진다.

'오름'은 자생식물의 보고며, 지하수 형성지대다. 중산간지대의 오름은 촌락 형성의 모태가 되기도 했고, 말을 돌보는
테우리들의 생활터전이기도 하다. 제주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오름을 보고 자랐고, 거기에 의지해 삶을 꾸렸고,
오름 자락 한쪽에 산담을 쌓고 떠나간 이의 뼈를 묻었다. 오름이 없는 제주도를 제주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전설에 따르면, 제주의 거신(巨神)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나르면서 한 줌씩 새어나온 게 오뚝오뚝한 오름이 되었고,
그중 너무 도드라진 오름을 주먹으로 툭 쳐서 누른 게 굼부리라고 한다. 오름은 그렇게 신성시되어

숱한 설화를 피워냈고 신비로운 오름에는 많은 제(祭) 터가 남아 있다. 오름은 제주 사람과 신들의 고향이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 중에서 -

 

 

 

 

 

 


서귀포 표선면에 있는 따라비오름은 주차장에서 보면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야트막한 동산이었다. 
해발 342m라고 하나 실제 오르는 높이는 겨우 107m이라고 한다.
그러나 숲길과 계단을 20분쯤 걸어 능선에 오르니 시야가 트이며 춤을 추는 듯 너울거리는 능선이 나타났다.
능선을 따라선 가르마 같은 길이 단정하게 나있었다.
진도아리랑 가락에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던 영화 『서편제』속 청산도 길을 떠올리게 했다.
길 양쪽으론 따라비오름의 가을을 알리는 억새가 솜털 같은 흰 빛을 잃고 후줄근히 비에 젖고 있었다.
오름 정상에건 아래쪽으로 시원스레 열린 풍경이 전방위로 장쾌했다.
빗줄기가 조금 거세졌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걸음걸음 신명을 부추기는 북소리 같았다.

 

 



<머체왓숲>
따라비오름은 오르내리는데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만족은 컸지만 시간이 너무 짧아 허전하기도 했다.
때마침 지인이 또 한 번 '불감청 고소원'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좀 부족하지 않아요? 한 곳을 더 걸을까요?"

그래서 머쳇왓 숲길.
우리로서는 지난번 미처 다 걷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길이라 좋았다.
지인은 벌써 몇 번을 걸었음에도 걸을 때마다 좋아지는 길이라고 한다.
"차가 있으니 하루에 두 곳도 가보네!"
아내는 일부러 '차가 있으니'를 강조하며 신기하다는 듯이 말투를 과장했다. 
다분히 차를 가져오지 않은 나를 향한 일종의 비아냥 같은 것이다. 
아내도 뚜벅이 여행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씩 버스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때나
노선버스로는 갈 수 없는 곳이 있을 때 아쉬워할 뿐이다. 어쨌거나 다음번 다시 제주도에 온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바쁘게 다닌다고 해서 세상을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뚜벅이 쪽으로 기울어 있긴 하지만.

머체왓에 도착하니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숲은 본래의 싱그러움에 비로 인한 청결함과 청량감이 더해져 원시적인 분위기가 깊어져 있었다. 
비옷을 벗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숲을 걸으며 부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비슷한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는 건 행복한 일이다.

 

 



<강원수산>
저녁은 남원에 있는 강원수산에서 했다. 작지만 정겨운 분위기가 있는 일식집이었다.
음식도 분위기에 어울리게 깔끔했다. 술 없이 회를 먹기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좋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느껴보는 일이었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역시 술보다 술자리이고 그보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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