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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하루만이라도 멈춰 달라

by 장돌뱅이. 2022. 1. 30.


우리나라 축구가 2022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 레바논을 1:0으로 이기고 본선 진출을 거의 확정 지었다. 축구팬인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만약에 우리가 못 나가고 남들끼리만 하는 월드컵이라면( 재미있긴 하겠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허전함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월드컵 하면 나는 디디에 드로그바(Didier Drogba)가 생각난다.
현란한 발재간과 몸놀림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 선수들은 많지만 축구장 밖에서까지  우리에게  감동을 준 선수는 많지 않다. 그는 2006년 코트디부아르를 첫 월드컵 무대로 이끈 주역이었다. 코트디부아르는 그때까지 나이지리아와 카메룬 등에 밀려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었다.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확정하는 경기를 마치고 생중계되는 TV 카메라 앞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호소를 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를 용서하고 무기를 내려놓읍시다."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내전 중이었다. 정부군과 반군이 국토를 양분하고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의 간청은 현실이 되었다. 정부군과 반군은 실제로 전쟁을 멈췄고 마침내 2007년 결국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물론 그것이 전적으로 드로그바 혼자 만든 결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쟁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유도하고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던 부분은 부인할 수 없겠다.
(2011년 다시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선거의 여파로 다시 내전이 발생하였다.
이때도 드로그바는 "코트디부아르에는 화합과 용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드로그바는 축구로 얻은 재산으로 코트디부아르에 학교와 병원을 세웠고 자신의 이름을 딴 '디디에 드로그바' 자선 재단을 운영 중이다. 얼마 전엔 병원을 코로나 치료센터로 내놨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많은 축구팬들이 그를 '드록신(神)'으로 부르는 이유다.




이번 대선은 이전의 여느 선거보다  역동적이지 못하고 혼란스럽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날만 새면 서로 상대방에 대한 추문을 쏟아낸다.
침소봉대(針小棒大)와 봉대침소가 난무한다. 자성이나 사과의 말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선거도 승부를 가리는 것이니 상대적 우위를 점하려는 속성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최소한의 '품격'조차 실종되니 피곤함만 남는다. 

전쟁 같다. 급기야 대내(對內)를 넘어 대외적 전쟁을 언급하는 말도 거침없이, 혹은 생각 없이 쏟아내기까지 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독사의 징그러운 혀 같이 징그러운 바람' 속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 것인지.' 옛사람 허유(許由)처럼 귀를 씻고(洗耳) 싶을 뿐이다.

드로그바처럼 부탁한다.
"설날, 하루만큼은 덕담 이외의 악다구니를 제발 멈춰 달라!"
시민들은 코로나만으로 이미 충분히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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