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생이는 냉이의 내 고향 사투리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나생이꽃 피어 쇠기 전에
철따라 다른 풀잎 보내주시는 들녘에
늦지 않게 나가보려고 조바심 낸 적이 있다
아지랑이 피는 구릉에 앉아 따스한 소피를 본 적이 있다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그 자그맣고 매촘하니 싸아한 것을 나생이라 불렀는데
그때의 그 '나새이'는 도대체 적어볼 수가 없다
흙살 속에 오롯하니 흰 뿌리 드리우듯
아래로 스며드는 발음인 '나'를
다치지 않게 살짝만 당겨 올리면서
햇살을 조물락거리듯
공기 속에 알주머니를 달아주듯
'이'를 궁글려 '새'를 건너가게 하는
그 '나새이',
허공에 난 새들의 길목
울 엄마와 할머니와 순이와 내가
봄 들녘에 쪼그려 앉아 두 귀를 모으고 듣던
그 자그마하니 수런수런 깃 치는 연둣빛 소리를
그 짜릿한 요기(尿氣)를
- 김선우, 「나생이」 -
서울에서 자란 나는 냉이 이외에 사투리인 나숭개, 나생이라는 말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냉이는 남자 아이들의 관심 밖에 일이라 흘려들었을 수도 있다. 한 번인가 냉이를 캐본 적은 있었던 것 같다.
모처럼 도와드린다고 평소에 없던 '효심'을 발휘했는데 어머니는 내가 캔 것은 대부분이 냉이가 아니라고 웃으셨다.
책을 보니 냉이꽃은 아주 작은 흰색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나는 잘 알지 못하고 기억에도 없다.
어릴 적 어머니와 신혼 시절 아내가 끓여주던 냉잇국에서는 진한 냉이 특유의 향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냉이를 구하기 힘들다.
(* 이전 글 참조 : 김승해의「냉이의 꽃말」 )
까치설날 저녁, 이튿날 딸아이네 방문에 대비하여 음식을 만들다 마트에서 사온 냉이로 국을 끓였다.
두부와 마늘을 넣지 않고 냉이와 된장으로만 끓였는데 예상했던 대로 냉이 대신 된장의 향과 맛이 강했다.
'그래도 냉잇국'이라고 아내와 서로 격려하며(?) 먹었다.
설 연휴에 추위가 있을 거라지만 "자그마하니 수런수런 깃 치는 연둣빛"의 새봄이 가까이 와있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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