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64 - 김승해의「냉이의 꽃말」

by 장돌뱅이. 2020. 2. 10.


신혼 시절 봄이면 아내는 냉이된장국을 자주 끓였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그땐 시장에서 산 냉이도 향이 짙어서 퇴근 길에 문을 열 때 냄새만으로 저녁 메뉴가 냉이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향이 희미해져서 이제는 '무늬만 냉이'라고 할 정도가 되었다. 재배 냉이의 한계이겠다.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냉이국을 한번 먹어줘야 봄이 온다. 

마트에서 냉이를 샀다. 다듬어 찬물에 씻으니 초록의 잎과 흰 뿌리의 색감이 싱싱하게 살아났다.
된장을 풀고 내 손으로 처음 냉이국을 끓여 보았다.
향은 예상했던 대로 미미했다.
그래도
냉이 특유의 은근한  구수함은 여전했다. 


냉이의 꽃말이 '모든 것 당신에게 바친다' 란다.
앙증맞게 작고 하얀 냉이꽃 ― 
'퍼주고도 다시 우러나는 국물 같은' 꽃말까지 예쁘다.


언 땅 뚫고 나온 냉이로
된장 풀어 국 끓인 날
삼동 끝 흙빛 풀어진 국물에는
풋것의 향기가 떠 있는데
모든 것 당신에게 바친다는 냉이의 꽃말에
찬 없이도 환해지는 밥상머리
국그릇에 둘러 피는 냉이의 꽃말은
허기진 지아비 앞에
더 떠서 밀어놓는 한 그릇 국 같아서
국 끓는 저녁마다 봄, 땅심이 선다

퍼주고도 다시 우러나는 국물 같은
냉이의 꽃말에
바람도 슬쩍 비켜가는 들,
온 들에 냉이가 돋아야 봄이다
봄이라도
냉이가 물어주는 밥상머리 안부를 듣고서야
온전히 봄이다

냉이꽃, 환한 꽃말이 밥상머리에 돋았다

- 김승해의 시, 「냉이의 꽃말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