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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65 - 김정환의「육교를 건너며」

by 장돌뱅이. 2020. 2. 12.


*텔레비젼 중계 화면 촬영


*영화 『기생충』 중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나는 아내와 작년 6월 극장에서 본 『기생충』을 다시 한번 더 보는 것으로 수상을 자축(?) 했다.
이번에는 인터넷으로 보았지만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여전히 흥미롭고 충격적이었다.
( https://jangdolbange.tistory.com/1829 )

묵직한 여운이 남았『살인의 추억』에 비해 『괴물이나 『설국열차는 개인적으로 큰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보다는 『플란다스의 개『마더』가 더 인상적이었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그럴 전문성도 없지만) 나의 장르별 선호도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
아무튼 『기생충』은 봉준호에 대한 기대치에 부응하며 그간의 미진함을 완벽하게 해갈 시키는 영화였다.

당분간 아내와 내게 영화의 중심은 봉준호 감독과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될 것 같다 .

영화의 놀라운 성공과 함께 뉴스 때마다 얼마 동안은 봉준호란 이름이 자주 들먹여질 것이다.

월드컵4강 때처럼 일반인들도 덩달아 그런 잔치의 분위기를 즐기고 '한류'에 대한 자부심을 느껴도 좋으리라.

다만 흥분이 가라앉을 무렵이면 영화 속에 그려진 '현실'을 
진짜 현실에 투영해보지 않을 수 없겠다.
방이 땅 보다 아래에 있고 변기가 방이나 부엌보다 높은 곳에 있는 집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존재.
그리고 해마다 반복되는 아파트 가격의 폭등 소식을 따라가는 들끓는 욕망의 눈길.
- 그 두 극단의 동거가 차라리 진부하게 느껴지는
 세상.
영국의 BBC는 "한국의 수도 서울에는 있는 수천 명의 사람이 여기(반지하)에 산다
"고 르뽀 기사를 실었다.
'Semi - Basement' 또는 'Basement Apartment'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Banjiha'라는 한국 발음을 그대로 옮겼다.

"빛이 거의 없어 다육식물도 살기 힘들고 사람들은 창문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10대들은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땅에 침을 뱉는다. 여름에는 힘든 습기와 빨리 퍼지는 곰팡이와 싸운다."고 했다.

영화 속, 젊은 누이는 홍수가 반지하 삶의 공간까지 거세게 밀려들고 오물이 거세게 역류하는 변기 위에서
마치 깊은 내공의 달관자처럼 담배를 피워물었다.
(부자집 어린 아들이 안락한 집에서 벗어나 구태여 집 밖에 텐트를 치고 폭우를 즐기는 동안.)
'형사 같지 않은 형사'가 말하는 법과 '의사 같지 않은 의사'가 진단하는 자신의 건강 상태에
젊은 오빠 역시 달관자처럼 그냥 '계속 웃었다.' 아버지는 끔찍한 사건 이후에도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
어두운 지하로 스며들어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애처롭게 알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손자친구'가 성년이 되는 '육교 건너'의 시간에는 이 모든 '세상의 저질러짐'이 끝나 있을까?
그렇게 믿어,
'오늘,
세상의 이 고통은 아름답다'고 씩씩하게 말하면,
'나는 언제나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주먹을 쥐면,
그것은 "다시 만나는 그날이 오기까지 건강하시라"는 영화 『기생충』속 아들의 
상투적 인사와는 얼마나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일까? 
.



육교를 건너며
나는 이렇게 사는 세상의
끝이 있음을 믿는다
내 발바닥 밑에서 육교는 후들거리고
육교를 건너며 오늘도 이렇게 못다한 마음으로
나의 이 살아있음이 언젠가는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고
또 사랑하는 것이다
육교는 지금도 내 발바닥 밑에서 몸을 떤다
견딘다는 것은 오로지 마음 떨리는 일.
끝이 있음으로 해서
완성됨이 있음으로 해서
오늘, 세상의 이 고통은 모두 아름답다
지는 해처럼
후들거리는 육교를 건너며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의심하며 살 것이며
내일도 후회 없이
맡겨진 삶의 소름 떠는 잔칫밤을 치를 것이다
아아 흔들리는 육교를 건너며
나는 오늘도, 이렇게 저질러진 세상의
끝이 있음을 믿는다
나의 지치고 보잘것없는 이 발걸음들이
끝남으로, 완성될 때까지
나는 언제나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 김정환의 시, 「육교를 건너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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