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66 - 윤의섭의「청어」-

by 장돌뱅이. 2020. 2. 17.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또 눈이네' 하며 아내와 내다보는 사이, 삽시간에 시야가 아득할 정도로 눈발이 더욱 거세어졌다.
아내가 외출하고 난 뒤에도 눈은 계속되었다. 나는 조용한 거실에 혼자 앉아 허공에서 나부끼는
"헤집어 놓은 생선살 같은 눈송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하고 무엇에겐가 겸손해지기도 하다간 까닭없이 애잔한 감정에 잦아들기까지 했다. 
"노선표의 끝은 결국 출발지"라는 말을 삶이거나 죽음에 어떻게 대입시켜야 하는지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버스를 기다렸으나 겨울이 왔다
눈송이, 헤집어 놓은 생선살 같은 눈송이

아까부터 앉아 있던 연인은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저들은 계속 만나거나 곧 헤어질 것이다
몇몇은 버스를 포기한 채 눈 속으로 들어갔지만
밖으로 나온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노선표의 끝은 결국 출발지였다
저 지점이 가을인지 봄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눈구름 너머는 여전히 푸른 하늘이 펼쳐졌을 테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시간은 좀 더 빨리 흘러갈 것이다

끝내는 정류소라는 해안에 버스가 정박하리라는 맹목뿐이다
눈의 장막을 뚫고 나오기를

기다린다는 건 기다리지 않는 것들을 버려야 하는 일

등 푸른 눈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
국적없는 눈송이들의 연착륙이 이어졌고
가로수의 가지들만이 하얀 속살 사이에 곤두서 있다
버스를 기다렸으나 이 간빙기에서는 쉽게 발라지지 않았다
-윤의섭의 시, 「청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