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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그래도 나와 상관있는 일

by 장돌뱅이. 2022. 1. 27.

한 노인이 들에서 나귀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정복자가 쳐들어 왔다.
노인이 외쳤다.
"빨리 도망쳐라." 그러나 나귀는 서두르지 않았다.
"만약 내가 잡히면 그들은 내게 짐을 두 곱으로 지울까요?" 하고 나귀가 물었다.
"그러진 않겠지." 노인이 대답했다.
"같은 짐을 지게 된다면 주인이 누구건 내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고 나귀는 말하는 것이었다.


이솝이야기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요즘의 대선 정국에 투사해도 나귀와 비슷한 말을 하게 될 것 같다. 누가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결국 일반인들의 삶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냉담이나 냉소를 조장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죄 없는 자들일수록 더 많이 참회하고
적게 먹은 자들이 더 많이 감사하고
타락하지 않은 자들이 더 많이 뉘우치고
힘들여 사는 자들일수록 고행의 순례길을 떠나고
적게 살생한 자들이 더 많이 속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러한 감사와 참회가 낡아빠진 문화라는 사실 때문에
그리하여 내가 사는 곳에 감사와 참회 따위가
입에 오르는 일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전에 낡은 체제를 혁명하고
또 혁명에 혁명을 거듭했기 때문에
더 혁명할 것이 없을 즈음에
마침내 어떤 진리에 이르렀기 때문에

많이 먹고 많이 가질수록 죄가 줄어든다는,


- 백무산,「히말라야에서」-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의 선택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삶을 제약해 온 온갖 모순이 일시에 제거될 리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그 이후 부단한 관심과 개입의 과정에서 서서히,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지루한, 직선이 아닌 나선형의 괘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고 갈무리를 해둔 사진인데 출처와 원작자를 알 수 없다.


말만 들으면 어느 후보가 되어도 세상은 엄청 좋아질 것 같다. 해방 이후 80년 가까이 그랬다.
어떤 정치 권력도 자신을 민주와 정의와 자유로 치장하고 내세웠다. 결국 우리의 판단 근거는 그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이 실질적으로 한 행동과 걸어온 발자취일 수밖에 없다.

당장에 벌어지는 일들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도 벅찰 지경이지만 동시에 좀 더 넓은 광각렌즈로 지난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시민 위에 군림하던 독재의 시기를 거슬러 일제 강점기의 암흑기까지 가닿는 동안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해왔으며 지금은 무엇을 딛고 서있는가를. 옛말에 추운 날이어야 시들지 않은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역사를 보는 시각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거기에 따른 판단도 다양할 것이다. 나의 기준은, 막연한 추상적 가치랄 수 있지만, 생명과 자연과 평화다.
지난 시기에 그리고 지금, 생명에 대한 존중과 자연에 대한 친화, 평화를 위한 갈망에 누가 더 가깝게 서있었고 또 서있는가? 선거는 그것을 가려내는 '축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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