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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정월대보름 전날

by 장돌뱅이. 2022. 2. 15.

"내일이 무슨 날이게?"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손자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는 밸런타인데이와 혼돈이 오는 모양이었다. 

"초콜릿 주는 날?  · · · · · · "

정월대보름이라고, 설날 이후 달이 처음으로 동그래지는 날이라고 말해주었다. 여러 가지 나물과 땅콩이나 호두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저녁 식사는 고사리, 마른 가지, 토란대, 고구마순, 호박오가리, 무나물, 유채나물, 시금치, 콩나물 등을 삶고 데치고 볶고 무치고, 오곡밥을 지어 딸아이네와  3대가 함께 앉아서 했다. 첫째 친구는 거무튀튀한 나물 색깔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별로 맛이 없을 것 같아' 하면서 조금씩 맛을 보고 몇 가지를 선택하여 먹었다. 어린 둘째는 뜻밖에 종류를 가리지 않고 용감하게 먹었다. 

원래는 저녁을 먹고 짧은 산책을 하며 달맞이를 할 생각이었다. 친구와 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저녁 무렵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외출 생각을 접고 집에서 친구와 뒹구는 것으로 시간을 대신했다. 언제나처럼 즐거웠다.

지금 저기
저 높은 곳에서
얼마나 많은 눈빛이
만나고 있는 것인가 

지금 여기
얼마나 많은 꿈이
얼마나 많은 안부가 안타까움이
저 달을 향하고 있는가

지금 한밤인 곳곳은
저마다 밤의 한가운데
지금 하늘 밝은 곳을 올려다보는
곳곳의 한밤의 중심은
저마다 얼마나 어두운 것인가

얼마나 많은 어두운 곳에서
얼마나 많은 오래된 기도가
저 달을 향해 올라가는 것인가
지상의 아픈 마음들 다 받아내는
저 달은 그래서 둥글어지는 것인가
그래서 저토록 둥글고 밝은 것인가

- 이문재, 「달의 백서 1 - 그래서 달은 둥글어진다」 -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특별할 것 없는 이 일상의 평화로움에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했다.
구름에 가려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늘 있던 그 자리에 있을 둥글고 밝은 달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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