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지공대사'가 되었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어르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어르신 카드'를 받으면 대단한 기념이라도 되는 양 무료 지하철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겠다고 흰소리를 치곤 했는데, 막상 그날이 되니 코로나 위세가 등등하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잊어먹고 있다가 며칠 전 병원에서 내가 '어르신'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진료비가 생각보다 적은 것 같아 물었더니 직원은 컴퓨터 화면을 확인한 후,
"어르신 혜택을 받으셔서 그래요." 라고 했다.
어르신 복지카드란 것도 받았다. 동네 일부 음식점이나 이발소 등에서 '어르신'들에 대해 약간의 할인을 해 준다는 것이다. 괜히 지갑 속만 번잡해질 것 같아 발급받기를 주저하자 주민센터의 담당 공무원은 "앞으로 점점 더 많은 혜택이 있으리라 예상되니 만들어 두시라"고 권했다.
그냥 복지카드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꼭 어르신이란 말을 앞에 붙이는 것인지 ······.
"어르신? ㅋㅋㅋ."
느닷없이 다가온 일인양 어색해하며 아내와 실소를 했다. 생각이나 행동은 아직 (70년대 유행가처럼) '커피를 알았고 낭만을 찾던 스무 살' 대학생 시절의 유치함에 머물러 있는데, 세월만 저 혼자서 부지런히 달려온 것 같다.
사회·제도적 연령대의 분류와 개인적인 생의 구분은 다른 의미겠지만 어쨌든 또 경계 하나를 넘어섰다는 느낌이다.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라" 했던가?
세월에 끌려서 허위허위 살아온 터라 이제라도 무엇을 버려야 할까 문득 돌아보게 된다. 나이에 상관없이 깨달음은, 안일한 타성과 정직하게 마주하는용기와 냉철한 자기성찰을 통한 자아인식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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