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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황홀한 국수」

by 장돌뱅이. 2022. 5. 26.

버섯물국수
해물국수
계란양파잔치국수
비빔국수
해물볶음국수


반죽을 누르면 국수틀에서 국수가 빠져나와
받쳐놓은 끓는 솥으로
가만히 들어가
국수가 익듯,

익은 국수를 커다란 소쿠리째 건져
철썩철썩,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듯,

손 큰 내 어머니가 한 손씩 국수를 동그랗게 말아
그릇에 얌전히 앉히고
뜨거운 국물을 붓듯,
고명을 얹듯,

쫄깃쫄깃, 말랑말랑
그 매끄러운 국숫발을
허기진 누군가가
후루룩 빨아들이듯,

이마의 젖은 땀을 문지르고
허, 허 감탄사를 연발하며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은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듯,

살다 갔으면 좋겠다

- 고영민, 「황홀한 국수」 -


한 사발 국수를 제대로 만들어내기는 내겐 아직 쉽지 않은 일이다.
 '황홀한 국수'처럼 살기는 더욱 어렵다. 
나이가 들었어도, 혹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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