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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엔데믹 풍경

by 장돌뱅이. 2022. 5. 28.

코로나 팬데믹의 광풍이 수그러들면서 오래 끊어졌던 예전의 모습들이 돌아오고 있다.
엔데믹 (ENDEMIC)이라 길래 나는 처음엔 영어의 'END'를 떠올리며 막연히 팬데믹의 종식이란 의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엔데믹은 "감염병이 외부의 유입 없이 특정한 지리적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거나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상황, 또는 그런 질병, 즉 풍토병"이라는 의미였다. 엔데믹의 어원도 'end'와 상관없이 '안'을 의미하는 'en'과 '사람들'을 뜻하는 'demo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문제라면 코로나의 경우  '특정한 지리적 영역'이 전 세계라는 것일 테고 다행이라면 코로나 변종이 초기처럼 치명적이지 않다는 데 있을 것이다. 아무튼 코로나 환자가 몇백 명만 나와도 끝 모를 공포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던 2년 전에 비해 지금은 몇 만 명이 발생해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산책길의 공원엔 여느 때완 다르게 많은 중고생들이 보였다. 야외 수업 때문인 듯했다.
바람에 뒤집히는 무수한 연초록의 나뭇잎 같은 재잘거림과 들뜬 소란스러움이 공원 안팎에 가득했다.


중고생들에 이어 어린 유치원생들도 등장했다.
병아리 같은 종종걸음과 목소리가 잔디밭을 건너 유쾌하게 전해져 왔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학번을 불행한 세대라고 부른 적이 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학생들의 자유로운 생각과 활동을 최고로 억압하던 시기였다. 
그에 못지않게 불행한 세대가 코로나가 퍼져나가기 시작한 재작년에 입학한 세대들이라 하겠다.
인생에 가장 빛나는 시기를 컴퓨터 영상 강의의 화면 속에 갇혀 지내야 했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끔 인사를 건네는 위층 생기발랄한 학생을 아내와 내가 안타깝게 바라봤던 유일한 이유였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린 대학교의 교정에도 최근 2년 동안 보지 못했던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무대가 세워지고 천막과 푸드트럭이 길 양편으로 줄을 지어 서있었다. 푸드트럭은 예전엔 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이었다. 교내 호수에 띄워 놓은 나무배는 환한 햇빛을 가득 담은 채 물결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칙칙하기만 하던 전염병이 꿈처럼 사라진 듯한 화사한 오월의, 엔데믹의 아침이었다.
다시는 지난 2년과 같은 시절로 돌아가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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