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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분수 같은 마음

by 장돌뱅이. 2022. 6. 5.

공원을 걷는데 불과 이틀 전까지도 느낄 수 없던 비릿한 냄새가 진동한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니 아니나 다를까!
흰색과 옅은 연두색의 중간쯤인 밤꽃이 가득한 나무가 서있다.
4월 라일락꽃, 5월 아카시아꽃에 이은 밤꽃의 유월이다.
계절 깊은 곳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생명들은 때가 되면 폭발하듯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다.

긴팔 셔츠를 벗고 걷는데도 등에 축축이 땀이 배어난다.
바야흐로 여름의 시작이다. 솟구치는 분수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소라게의 모험 - https://youtu.be/rtqwpjoRXNc)


물이라고
고여 있거나 흐르기만 하는 것은
아냐

키를 세워
일어설 줄도
알아

선 채
버틸 줄도
알아

추켜들었던 고개를
꺾어
수그릴 줄도
알아

촤르륵 촤르륵!

- 이상교, 「분수」 -


동시 속 분수가 나의 마음 같다.
잔잔하고 다정한 봄바람이 불다간 때로는 격정적인 폭풍우와 매서운 눈보라가 지나가기도 한다.

닮지 못한 건 추켜들었던 고개를 수그리는 겸손함이다.
때에 맞춰 꽃을 피워내는 계절처럼 연륜에 걸맞은 품성을 가꾸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렇게 생겨먹은 게 난데.
자책하고 긍정도 하며 늙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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