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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당신이 옳다』

by 장돌뱅이. 2022. 6. 9.

알마 타데마(Lawrence Alma-Tadema), 「Welcome Footstep」 1883


세상에 말 다 지우면 남는 말 한마디가 사랑이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마지막까지 지우기 힘들었을 다른 말들을 생각해본다.
간단하지만 때로는 천냥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말들이 떠오른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축하합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 드시고 가시지요?"
"기다렸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가슴을 뛰게 하고 귀를 기울이게 하는 연인의 발자국 소리처럼 다가오는 말. 늦은 귀가의 가족을 위하여 아랫목 이불 밑에 묻어둔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은 말.  '충조평판(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이나 설득의 '바른말'이 아니라 너와 나의 상처와 고통을 긍정하는 말. 듣기 좋은 '좋은 말 대잔치나 칭찬의 립서비스'가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향하고, 존재 자체에 내려앉는 말'. 

『당신이 옳다』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어도 공감으로 관계와 소통을 불러올 수 있고 마침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말들에 대한 책이다. (여기서 말은 비언어적 표현인 몸짓과 마음가짐도 포함한다.) 책을 쓴 정혜신은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고 최근에는 국가폭력 피해자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정신적 외상 치유 활동에 주력해 왔다.

책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한 설득력 있는 논리로 '조용히 스러지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적 허기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감'의 치유법에 대해 알려준다. 그 공감은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지 않는, '나'라는 존재를 상실하는 일방적 몰입이나 치우침이 아닌 '경계를 품은 공감'이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나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성찰을 건너뛰고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일로 넘어갈 방법은 없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자전거의 왼쪽 페달이라면 자기를 살피는 일은 동시에 돌아가는 오른쪽 페달이다. 한쪽이 돌아가지 않으면 그 즉시 자전거는 멈추고 넘어진다. 자기에 대한 성찰이 멈추는 순간 타인에 대한 공감도 바로 멈춘다.

『당신이 옳다』 속표지에 써있는 글


"당신이 옳다."
온 체중을 실은 그 짧은 문장만큼 누군가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말은 세상에 또 없다.

대중가요처럼 책 속의 모든 말을 지우면 "당신이 옳다"라는 제목만 남을 것이다.
공감도 관계도 소통도 치유도 결국 거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삶의 보편적인 바탕인 갈등이나 상처, 고통을 이겨내고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그런 말을 건네주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한 사람만 있으면 산다. 내겐 아내가 그 '한 사람'이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 참혹함 속에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전부 잃은 사람도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 전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다. 이상한 연결처럼 느낄 수도 있다. 논리적, 수학적으로는 맞지 않는 현상인데 마음의 영역에선 그렇다. 한 사람의 힘이 그렇게 강력한 것은 한 사람이 한 우주라서 그럴 것이다. 근사한 수식이나 관념적인 언어가 아니라 마음에 관한 신비한 팩트다. 사람은 그 '한 사람'이라는 존재의 개별성 끝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세상의 전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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