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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드디어' 방콕에 가다 5

by 장돌뱅이. 2022. 7. 5.

동남아에 갈 때마다 열대 과일을 많이 먹게 되지만 이번엔 주요 '미션' 중의 하나로 정했다. 특별히 '미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는 아내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유일한 열대과일 두리안에 대한 도전 의지를 새롭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90년대 초 인도네시아에 주재할 때 두리안을 처음 맛보았다. 사람들은 '과일의 왕'이라 칭송하며 두리안을 권했다. 처음 경험하는 진득한 식감에 고소하달까 구수하달까 달콤하달까 아무튼 미묘한 맛이었지만 훌륭했다. 아내는 두리안 특유의 냄새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 이후 아내가 싫어하는 과일을 혼자서 먹을 일 없고 망고나 망고스틴, 람부탄, 파파야로도 충분히 만족했기에 두리안은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여러 차례의 동남아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리안은 호텔 안으로 가져오면 안 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벌금까지 물어야 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사실 내가 호텔 입구에 두리안 경고문을 직접 본 것은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 있는 샹그릴라 호텔 한 곳뿐이었지만 그런 소문은 이미 상식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싱가포르에서는 아예 전철에서부터 두리안은 반입 금지 품목이었다.

이런저런 제약으로 여행자의 입장에서 두리안은 경험하기 곤란한 과일이다.
두리안 한 개를 한꺼번에 먹을 수 없으니 호텔 내 냉장고에 보관을 해두고 나누어 먹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니 유일한 방법은 잘라서 낱개로 포장된 두리안을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 않았다. 슈퍼나 길거리에서 살 수는 있지만 먹을 장소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물론 길거리에서 먹으면 되겠지만 더운 날씨를 참아가며 길거리에서 먹는 모습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길거리 음식은 잘 사 먹으면서도 두리안에 대해선 인색했다.)   

아침 산책 길, 룸피니 공원 근처에서 한 노점상이 두리안을 팔았다.
첫날은 장사가 잘 안 되어서 그랬는지 낱개 포장을 몇 개 늘어놓고 있었다. 사고 싶었지만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 이튿날엔 얼마의 돈을 가지고 갔다. 일단 사 가지고 호텔에 반입이 안 되면 수영장 같은 야외 공간에서 먹을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날부터 장사가 잘 되어 오는 사람마다 두리안을 통째로 사 가지고 갔다. 낱개로 포장해가는 사람이 없어 여분이 남지 않았다. 며칠 동안 아침마다 그곳을 지나며 구경하는 통에 장사하는 아저씨와 얼굴도 익혔지만 끝내  그곳에서 두리안을 살 수 없었다.


사람들이 와서 두리안을 고르면 장사는 옛날 우리나라 수박을 고를 때처럼 삼각형으로 껍질을 갈라 속을 보여주었다. (두리안을 살 때 이런 흔적이 남아있다면 누군가 사려다가 포기한 것으로 안 사는 것이 좋다.) 사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속살을 눌러보았다. 두리안의 색깔과 탄력을 확인하여 잘 익었는지를 판단하는 것 같았다. 덜 익은 속살은 딱딱하고 잘 익은 두리안의 속살은 부드러우면서도 탱탱하다고 한다.

두리안은 굵은 가시 돋친 딱딱한 껍질로 일반인이 가르기 쉽지 않아 파는 사람이 두터운 장갑을 한 손에 끼고 일일이 갈라서 속살을 포장해 주었다. 두리안은 잡을 때 신경을 써서 꽉 잡아야 한다. 실수로 발등에라도 떨어지게 되면 여행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두리안 나무 아래서는 연애를 하지 말라"는 말까지 있다.


두리안을 처음 먹은 곳은 아이콘시암의 푸드코트였다. 
낱개 포장으로 팔고 먹을 장소도 있었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두리안 조각을 입에 넣었다. 나도 긴장된 표정으로 아내를 주시했다. 맛을 음미하던 아내의 표정이 금새 밝아졌다.
"이 맛난 걸 왜 예전 인도네시아에 살 때는 못 먹었지?!"

두리안 '특유의 냄새'라는 표현은 에두른 표현이고 쉽게 말하면 두리안에서는 똥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냄새가 지나치게 강렬한 것은 잘 익은 때를 지나 지친 것이다. 아마 아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먹은 두리안이 이런 상태였을지 모르겠다. 덜 익은 두리안에서는 아예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똥냄새라고 했지만 이것은 두리안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 잘 숙성된 치즈나 버터의 냄새와 같다고나 할까?  표현하기 힘들다.

두리안도 여러 종류가 있는 듯했다.한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찍은 위 사진에는  NUAN THONG CHAN, PREMIUM MONTHONG, KANYAO, PALA-U DURIAN 등의 표지가 붙어 있었다. 내가 각 종류의 차이점을  알 수는 없다. 태국 친구는 어떤 것은 '크리미'하고 어떤 것은 '크런치'하다고 말했지만 그건 태국 사람이라 가능한 구분이겠다. 

식물학자 알프레도 윌라스(Alfred Wallace)라는 식물학자는 두리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인상은 강렬한 냄새이며, 두 번째 인상은 기막힌 달콤함이고,
마지막 인상은 신비로운 맛이지만 끈질긴 냄새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르다고 하던가. 이 뒤로도 끌렁떠이 시장, 센트럴과 센트럴 엠바시 푸드코트에서 세 번을 더 먹었다. 디저트까지 두리안 케이크로 먹으며 우리는 '두리안 러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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