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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드디어' 방콕에 가다 6

by 장돌뱅이. 2022. 7. 6.

열대 과일 대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과일에 얽힌 몇몇 기억들이 떠오른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잘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들.
그런 소소한 기억들이 많을수록  삶이 더 풍성해질 수 있다고 나는믿는다.


첫사랑, 첫만남, 첫키스, 첫여행 처럼 무엇이건 '첫'자가 들어가는 기억은 일생을 동반하는 법이다.
지금도 망고스틴을 먹을  때면 90년대 초 처음으로 (신혼여행 때도 못 타본) 비행기를 타고, 첫 외국인 인도네시아에 도착하던 첫날을 생각하게 된다.

저녁 식사를 겸한 환영식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니 먼저 와있던 동료들이 열대과일 오리엔테이션이라고 냉장고에  여러가지 과일들을 넣어두고 있었다. 망고스틴이 모양과 맛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다. 바나나와 파인애플 이외에는 열대과일을 알지 못하던 시절이라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망고스틴은 먹는 법부터 동료들에게 배워야 했다. 딱딱해 보이는 외피를 손가락으로 누르니 쉽게 부서지듯 갈라졌다. 그 속에 마늘처럼 하얀 속살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입에 넣으니 새콤달콤한 맛이 향기처럼 입안에 퍼졌다. 

그렇게 망고스틴은 미지의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도전 의지와 함께, 낯선 곳에서 가족과 같이 살아내야 한다는 가장으로서 얼마쯤의 부담감과 두려움이 공존하던 순간에 만난 첫 과일이었다. 


망고스틴은 익은 후 25일 정도 보관이 가능하며 이 기간이 지나면 껍질이 딱딱해지고 속살도 질겨지며 즙도 말라간다. 따라서 살 때 만져보고 껍질이 약간 들어가는 느낌의 망고스틴을 골라야 한다. 보통 5∼7월이 망고스틴을 먹을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기이다. 껍질에 들어있는 자줏빛 즙은 천연염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안 사실로 망고스틴의 꼭지의 반대편에 꽃잎처럼 보이는 조각의 수와 과일 안의 알맹이의 수가 일치한다고 한다.


80년대 회사일로 우리나라에 자주 오던 싱가포르 손님이 있었다.
나이가 나와 동갑이어서 그는 나의 전담이 되었고  우리는 업무를 떠나 친구처럼 지냈다.
하루는 그가 백화점 구경을 하다가 바나나를 보고 가격을 물었다.
당시는 어렸을 적부터 부르던 노래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건 바나나' 하는 식의 노래가 여전히 유효할만큼 바나나는 귀하고 접하기 힘든 과일이었다. 달러 환율이 800원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바나나 한 개의 값이 천오백 원이었다. 그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For one piece? or one bunch?"

솔직히 그때까지 외국에 가본 적이 없는 나는 바나나가 원래 그렇게 비싼 과일로 알았다.
바나나 껍질을 밟으면 넘어진다는 만화 속의 상식만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열대 과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내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과일 이름를 꺼냈다. 바나나와 파인애플만, 그것도 바나나는 한두 번인가 먹어봤고 파인애플은 통조림으로 역시 한두 번 먹어봤을 뿐이라는 나의 말에 그는 더욱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는 것처럼 "How about mango?"라고 물었다. 나는 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 실체를 본 적은 없다고 했다.

다음 방한 때 그는 몇 개의 망고를 밀수품처럼 가방 속에 숨겨왔음을 귓속말로 내게 알려줬다. 
반드시 가족들하고만 나눠먹으라고 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입에서 녹는' 망고의 달콤함을 불법적으로 일찍 경험할 수 있었다. 나처럼 딸 하나를 두어 출장 기간 동안 늘 가족 생각에 애틋해했던 사내 Richard, 아내와 망고를 먹을 때면 자주 그를 떠올린다. 

아래 사진은 망고와 찰밥, 그리고 코코넛 밀크를 뿌려 먹는 태국 음식 "카오 니아우 마무앙"이다.
노점에서 사서 한 끼 식사로도 먹지만 디저트로 많이 먹기 때문에 태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 이것을 위한 '여유'를 남겨두어야 한다. 


람붓(Rambut)은 인도네시아 말로 머리털(머리카락)을 뜻한다. 람부탄(Rambutan)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태국에서는 람부탄을 '응오(Ngo)'라고 부른다. 응오는 태국 남부 지역의  머리가 곱슬곱슬하고 피부가 유달리 검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응오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얼굴이 검고 털이 많은 사람이 있었다. 외모는 람부탄 같지만 마음은 더없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의 외모가 아닌 마음에 반한 공주가 그와 결혼을 했다. 첫날밤 그는 털이 많고 검은 가면을 벗고 아름다운 얼굴을 공주에게 드러냈다."

잘 알려진 "미녀와 야수"의 스토리 같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지만 북쪽에서 내려와 태국 전역을 지배하게 된 비교적 얼굴이 흰 종족이 상대적으로 검은 피부를 가진 원주민에 대한 비하를 심은 것 같아 마음이 좀 불편하다. 그보다는 람부탄이 좋다. 그리고 람부탄의 겉모습이 흉측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껍질을 벗기면 전설처럼 뽀얀 속살이 예쁘게 드러난다. 맛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아침 식사 때 람부탄을 까서 아내 앞에 놓았다.
아내는 작은 일에 자주 크게 좋아하여 나를 즐겁게 해준다. 나는 말한다.
"아부는 충성의 발로라니깐!"


중국 남부가 원산지라는 리치(Lychee, Litchi, 茘枝)는 재배의 역사가 2천 년 이상이라고 한다. 
황제에게 바치는 진상품이라고 하나 단맛이 떨어져서 인지 요즘은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산딸기 같은 모양새의 오돌도돌한 돌기가 있다.   


이번 방콕 여행 중 만난 옛 태국인 친구에게 아래 과일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검색을 해서 롱콩(Longkong)이라고 알려주었다. 랑삿(Lanhsat)이라는 영어도 있어 나중에 알아보니 롱콩과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의 과일이라고 한다. 마늘 같은 과일이 얇은 거죽에 둘러싸여 있고 과즙이 많고 신맛이 있었다.


용과(Dragon Fruit)는 베트남 중부지역이 원산지라고 한다.
해변의 모래 섞인 땅에서 자라는 선인장에 달리는 과일이다.
겉은 붉지만 속은 흰색에 검은깨 같은 것이 박혀 있다. 식감은 푸석하고 밍밍한 맛이다.
최근 제주도에서 온실로 재배되고 있다고 하는데 상업적인 결실을 맺었는지는 모르겠다.


껍질이 뱀 껍질 같아 보여서 사락(Sarak)이라는 이름 대신에 아내와 난 '뱀 껍질 과일'이라고 부른다.
껍질은 보기완 달리 강하지 않고 얇아서 쉽게 벗겨진다.
과즙이 많지 않아 뻑뻑한 식감이지만 시큼하면서도 단맛이 있어 그런대로 거부할 맛은 아니다.
잘 익지 않은 사락은 떫은 맛을 낸다.


내가 인도네시아에 살던 마을은 '아름다운 노란 야자수 마을(Kelapa Gading Permai)'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파월장병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쓸 때는 보지도 못한 야자수라는 표현을 애써 넣기도 했다. 현지인에게 건 이방인에게 건 야자가  열대지방의 상징 같은 과일이라는 뜻이겠다. 길거리에서는 보통 정글도로 딱딱하고 두꺼운 껍질에 쌓여 있어 턱턱 깎아 구멍을 내어서 빨대를 꽂아준다.

열매 속의 물은 음료 대신으로 마셔도 좋다. 맛은 닝닝하지만 동남아 이슬람교도은 영혼을 정화시키는 순수한 물로 여겨 신에게 바치는 성수로 사용하며 태국 불교도들은 이 물로 시신의 얼굴을 닦은 후에 화장을 한다고 한다.

투숙했던 숙소에서는 예쁘게 외관을 다듬어 아침 식사 때마다 내놓아 매일 한 통씩 먹었다.


이상의 과일 이외에 잭푸르트, 애플망고, 파파야, 구아바 등도 먹었다. 
굳이 우리나라 과일과 맛의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 우리 과일을 먹고 외국에 가면 그 나라의 과일을 먹을 일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나 같은 백수에게는 세상은 넓고 먹을 과일이 많은 곳이기도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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