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미국

샌디에고 걷기4 - 라호야 LA JOLLA 해변

by 장돌뱅이. 2012. 5. 21.

샌디에고 북쪽에 있는 라호야 LA JOLLA 해변.
자동차로 해안을 달리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집들이 줄줄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사는 국경 부근 동네의 규격화된, 그래서 그 모양이 그 모양인 집들과 달리
이곳의 집들은 저마다 호사스러우면서도 독특한 외양을 지녔다.
커다란 통유리의 거실과 넓은 테라스가 태평양을 향해 있다는 점만이 같을 뿐이다. 

부러워했던가. 솔직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바라보는 태평양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별의미 없는 상상조차  가난한 나라의 성냥곽만한 아파트에 살다온
아내와 내게는 어차피 너무 비현실적일 뿐이어서 오래 남겨두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실감나게 부러웠던 것은 길거리 카페의 탁자에서
털북숭이 애견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한 사내의 다감한 눈빛이었고
팔걸이 의자에 파묻혀 바다를 바라보는 노부부의  
어깨 위에 내려앉던 한가로운 햇살이었다.

인간의 역사를 개인의 시간을 확대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면
확보된 시간의 주체로서 자유로운 시간의 활용은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될 것이다.

햇살 가득한 해변을 걷는 일.
그것은 그런 숙제를 풀어가는 아내와 나의 방식이다.
그 무덤덤함의 감미로움. 은밀하면서도 충만한 우리만의 시공간.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축복

걷기 전 아침식사도 라호야에서 하기로 했다.
코티지 COTTAGE 라는 이름의 작은 식당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식당 직원들의 상냥하고 쾌활한 목소리는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라호야해변의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걸었다.
해변엔 다양하게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카약하고 서핑을 하고 모래놀이를 하고.
뭔가 진지한 모습으로 침묵 속에 걷기도 하고.

떠나온 곳이 먼 곳이건 가까운 곳이건
모두들 행복해지기 위해 떠나온 것일테고
기대한만큼 행복해져서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거기서 '제네바'는 실재하는 제네바가 아니라
행복과 이상의 상징으로서의 제네바였던 걸로 기억한다.
라호야에서 그 제목을 빌려와도 괜찮았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라호야로 간다"

낮게 드리운 구름의 심술로 기온이 낮아져
비록 맨발로 걸으려던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