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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샌디에고 걷기5 - CANYON CREST TRAIL

by 장돌뱅이. 2012. 5. 21.

라호야보다 조금 북쪽에 있는 트레일.
CANYON 이라 하지만 계곡의 윗쪽으로는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한국처럼 고층빌딩이 아니라 모두 단층의 주택들이라 숲속에 묻힌 것처럼 보인다.

그 가운데 골짜기는 원래 있던 그대로의 숲이다.
새들과 뱀과 토끼와 꽃과 나무들이 그곳에서 산다.
인간만이 이 땅위에 주인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흔하고 작은 존재들에게 좀더 겸손해야 한다. 

숲 사이로 길이 나있다.
사람이 지나갈만한 폭에 흙길이라 정감이 간다.
아내를 앞세우고 걷는 길이 흡족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이름난 곳이야 당연히 가볼 가치가 있겠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찾는 시간도
그에 못지 않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에는 가치가 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아내와 길을 걷다가 가끔씩 멈추어서서 눈을 감아보곤 한다.
그때 귀가 열린다. 들리지 않던 소리가 비로소 들려온다.
새소리가 들려오고 바람소리가 들려오며 그 소리들에 꽃향기가 실려온다.
눈을 뜨면 초록의 잎새와 노란 꽃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삶이 헛헛해 질 때 더러 숲속으로 가서 잠시 눈을 감아 볼 일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음 대신에
자연이 주는 소리와 향기에 오감을 모으고 충만해져 볼 일이다. 

크레스트캐년 트레일을 나와 조금 더 북쪽으로 차를 몰면 칼스바드 CARLSBAD를 만난다.
그곳은 프리웨이를 벗어나자 마자 넓은 딸기밭이 펼쳐진다.
얼마의 돈을 내면 직접 딸기를 한통이나 딸 수 있다.
같이 보낸 시간이 많을수록 정도 깊어지는 법이다.
슈퍼에서 사는 과일값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내 손으로 직접 딴 딸기는 더 예쁘게 보인다. 

한주 뒤 아내와 나는 크레스트캐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SAN ELIJO LAGOON TRAIL을 걸었다.
이름에서 보는대로 호수를 끼고 도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러나 깜박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남은 사진은 없지만 기억 속에 더 선명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셔터를 누르는 시간을 길에 나누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뷰파인더 밖에도 소중한 것들이 많음을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다.
길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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