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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CHANNEL ISLAND NATIONAL PARK1- ANACAPA섬

by 장돌뱅이. 2012. 5. 23.


*위 사진 : 출발항인 OXNARD

배가 OXNARD항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배시간에 대기 위해 샌디에고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세 시간 가량을 달려야했던 작은 긴장감과 피로가 더불어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모든 여행의 시작이 그렇듯 어떤 기대감으로 충만한 감정이 되어
흰색 요트들의 깃대들이 숲처럼 빽빽한 항구를 바라보았다.

안개는 짙었다. 쉬이 물러갈 기세가 아니었다.
축축한 물방울들이 배의 이동과 함께 몸과 얼굴에
부딪혀오며 제법 싸늘함을 느끼게 했다.
6월인데 아직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다는 증거다.

오늘의 목적지는 EAST 아나카파섬.
배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로스엔젤레스 북서쪽 바다에 있는 채널아일랜즈 국립공원의 섬 중에서
육지에서 제일 가까운 섬이기도 하다.


*위 사진 : 채널아일랜즈 국립공원, 내가 이번에 다녀온 곳은 아나카파섬과  산타크루즈 섬이다.
              (인용: 국립공원 홈페이지)

채널아일랜즈는 크게 5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4개의 섬 -아나카파 ANACAPA, 산타크루즈 SANTA CRUZE,
산타로사 SANTA ROSA, 산미겔 SAN MIGUEL - 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남동쪽으로 40여 마일 떨어져 산타바바라 SANTA BABARA 섬이 있다.
모든 섬은 현재 주민이 살지 않는 무인도이며
갈매기와 펠리칸, 물개 등의 서식지로 보호를 받고 있다.
그 중 아나파카섬은 동과 서, 그리고 중간의 새 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


*위 사진 : 동 아나파카섬(국립공원 홈페이지)

섬으로 가는 방법은LA 북쪽의 벤츄라 VENTURA와 OXNARD 항구,
그리고 SANTA BABARA에서 배를 타면 된다. 배편은 봄에서 가을까지만 운행하며
대략 하루에 한번씩이나 주말이면 증편되기도 한다. 배의 운항 일정에 따라야 하니
하루에 두 섬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www.islandpackers.com)
섬에는 캠핑을 할 수 있으나 캠핑장이라는 공터 이외에 어떠한 편의시설도 없다.
필요한 물까지도 각자가 싸가지고 가야 한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물론 캠핑이 아니라 트레킹이다.
10시경에 도착하여 다시 출발하는 오후 3시경까지 섬에서 주어진 시간은 대략 대여섯 시간.
그 정도면 배가 닿는 지점에서 EAST ANAPACA섬을 가로질러 섬의 또 다른 끝에 있는
INSPIRATION POINT 를 왕복하는 2.5KM 정도의 트레킹은 물론 중간에 점심 식사를
한다고 해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우윳빛의 안개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더욱 망망하기만 한 뱃길에
작은 소동이 일었다. 돌고래 떼가 나타난 것이다. 여름철 섬을 찾는 이들만 볼 수 있는
보너스라고 한다.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보는 모습과는 또 다르다.
활기차고 유쾌해 보인다. 자유는 생명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돌고래가 지나가고 잠시 후 밝아오는 안개 속에 멀리 등대를 머리에 인
섬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배는 섬의 절벽 부위에 접안을 했고
우리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킹 전 국립공원 직원의 주의사항 전달이 있었다.
지정된 트레일을 벗어나지 말라는 통상적인 것이외에
지금은 새들의 부화시기이라 예민한 상태이니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말고
트레일에서조차 새들의 (특히 새끼를 거느린) 우선통행을 보장해줄 것을 강조했다.

아나카파섬의 주인은 새들이었다.
갈매기와 멸종 위기의 펠리컨 그리고 매 등등.
사람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다.
그들은 섬의 모든 곳을 장악하고 있었다.
키 작은 관목이 늘어선 언덕과 바위, 절벽과 하늘.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서 그들은 날고 걷고 달리고 쉬고 있었다.

비지터센터를 비롯한 몇 동의 인간들의 건물들은
본래의 색깔 대신 그들이 남긴 흰색의 배설물로 뒤덮여 있었다.
온 섬에 오뉴월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새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위 사진 : 맨 아래 갈색으로 보이는 녀석들은 물개들이다.

혹성탈출이 원숭이가 지배하는 별에 대한 상상이었다면
이 섬은 새들이 지배하는 현실이었다.
새끼들을 거느린 새들은 정말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지정된 길을 걸어도 길 양옆에서 자신들의 새께들에게
혹 해가 될까 목청을 높여 울어대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어떤 놈은 우리와 매우 가깝게 저공비행을 하며 위협을 가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최고의 고집불통을 만나게 되었다.
무슨 일인지 트레일 위에 깔아놓은 나무 발판 밑으로
들어간 어린 새끼의 부모가 되는 모양인데 이 녀석은 우리가 지나가야할 발판 위에서 당최 움직이질 않았다.


위 사진 : 혹 아나카파섬에 가실 분이 있다면 이 녀석의 얼굴을 잘 봐두고 가능하다면 피하길 바란다.

우리는 사전교육대로 놈이 스스로 비켜주기를 기다렸다.
5분...10분...15분...20분...
그런데 녀석은 완강했다.
25분......
아내의 만류가 없었다면 진즉에 결행했을 '무력진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녀석이 서 있는 발판 위로 발을 옮겼다.
내가 움직일 기세만  보이면 키 높이만큼 공중으로 솟으며
울부짖던 녀석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내 몸 좌우로
저공비행을 하며 위협을 가했다. 자기들끼리도 무슨 언어가 있을까?
혼비백산한 새끼가 발판 밑에서 저쪽 숲으로 튀어나왔다.
마침내 녀석도 새끼와 더불어 길을 터주었다.

아내는 그곳을 빠져나온 뒤론 새들을 멀리 피해서 걸었다.
새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히치콕 감독의 공포 영화 "새"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무서워하는지 모르는 '새대가리'일 뿐이다.
무엇이건 섬의 주인으로서 드러내는 그들의 텃세를 우리는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비지터 센터 앞 탁자에서 우리는  준비해간 간편식으로 식사를 했다.
새들은 여전히 요란스러웠지만 그들의 거침없음이야 말로
푸른 바다와 꽃들과 함께 평화스러움의 실체였다.
섬을 떠나기 전 배는 섬 주변을 한바퀴 돌아주었다.
절벽 아래 작은 해변을 차지하고 누워있는 물개들의 낮잠도 그러했다.
언제부터인지 안개는 걷혔고 밝은 햇살은 아침에 출발하였던 항구로
돌아오기까지 우리와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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