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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샌디에고 걷기7 - GASLAMP QUARTER

by 장돌뱅이. 2012. 5. 23.

GASLAMP QUARTER가 있는 샌디에고 시내까지 빨간색의 예쁜 전철을 타고 갔다.
전철은 진즉부터 아내와 타보려고 마음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펫코파크에 야구구경을 가면서 몇번 타본 적이 있지만 아내는 처음 타보는 것이었다.)
전철 한번 타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작심까지 하느냐고 웃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까운 슈퍼조차도 직접 차를 몰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이곳 샌디에고의
상황인지라 전철과 버스로 실낱 같이 이어놓은 이곳 대중교통은 진귀한 것이고
그래서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때에 따라 작심까지 해야하는 특별한 경험인 것이다.

미국에서(적어도 서부지역에서) 자가용은 편리하고 안락한 사적인 공간을
확보하려는 선택적 교통수단이 아니라 그것 아니면 달리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필수품이고 그런만큼 강요된 수단이다.
더군다나 대중교통이 고사되는 과정에 자동차 자본의 이익 창출의 의지가
관여되어 있다고 하니, 자가용의 보유율이 설혹 선진성을 나타내는 어떤 지표가
된다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인간적인 생활양식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 미국인들이다.
그러다보니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할 수 밖에 없는 국민이 되었다.
쓰레기 배출량도 세계 최고라고 하던가.


오바마 집권 이후 미정부는 다방면에서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기계장치의 개선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인 문제이고 소비의 형태를 포함한 생활양식 전반의 문제일 것이다.

GASLAMP QUARTER는 샌디에고 다운타운에서가장 오래된 건물군이 남아 있는
“HISTORIC DISTRICT”이다. 미국의 역사라는 게 그리 길지 않다보니
‘HISTORIC’ 이라고 하지만 건물의 대부분이 1900년 전후하여 지어진 것들이다.
얕은 역사를 지닌 건물들이지만 지나간 흔적을 지키려는 노력들은 소중해 보인다.
급격한 개발의 힘에 떠밀려 조금이라도 오래된 것은 가차없이 사라지는
우리의 서울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 건물들은 지금도 여전히 호텔, 쇼핑센타, 극장, 식당, 커피숍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히스토릭 구역'내에 거대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거나 건축사적으로 기념할만한 대단한 건물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중요치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의 모습으로 친근하다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최고'나 '최대'라는 수식어에 너무 현혹될 필요는 없다.
그런 단어들이 몰고오는 격정의 감동만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개스램프의 길을 걸으며 만나는  그다지 '히스토릭'해 보이지 않는 건물들,
그리고 갖가지 표정으로  거리를 걷거나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무수한 갑돌이와
갑순이들, 장삼이사들, 탐앤쥬디 TOM AND JUDY들, 호세 JOSE와 마리아 MARIA들
- 어쩌다 이방인으로서 샌디에고에 살게된 우리와 그들과의 옷깃조차 스치지 않는
그 작디 작은 먼지 같은 인연들이 전해주는 편안함과 은밀하게 교감하며 아내와 나는
해가 저물도록 천천히 거리를 오르내렸다.

"삶은 나와 상관없는 것들과의 상호작용" (영화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
이라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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