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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CHANNEL ISLAND NATIONAL PARK2 - SANTA CRUZ섬(끝)

by 장돌뱅이. 2012. 5. 23.

아나파카섬에서 돌아와 항구에서 가까운 중급 숙소에 묵었다.
미리 저녁을 먹고 들어와 체크인 한 뒤에 더 이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에 수영장이 내려다보이는 베란다에 앉아 아내와 맥주를 마셨다.
천천히 날이 저물었고 저녁 안개가 몰려왔다.
안개는 다시 내일 아침까지 머물 것이다.

산타크루즈로 가는 배는 아나카파와는 달리 VENTURA항에서 출발했다.
숙소에서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항구였다. 서둘 필요가 없었다.
승객들은 어제의 아나카파행보다 훨씬 많았다.
배의 규모도 컸다. 우리는 어제처럼 배의 상단에 자리를 잡았다.
예상했던 대로 안개는 짙었고 체감온도는 어제보다 낮았다.
파도가 조금 높았다. 배가 움직이면서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어제와는 조금 다른 경로의 뱃길이었지만 가는 도중에 부표 위에 올라 잠을 자는 물개들과
돌고래들의 귀여운 몸짓을 볼 수 있었다. 돌고래들은 배에 가깝게 붙어 부드러운 유영을
선보여주기도 했다. 어제와 비슷한 풍경이나 인위적인 쑈가 아니어서 여전히 싱싱해 보였다.

산타크루즈는 35키로미터의 길이에 6만에이커(약8천만평)의 면적으로 채널아일랜즈의
섬 중에서 가장 크다. 한 때는 육지에서 사람들이 들어와 섬 곳곳에 가축들을 방목하기도
했고 밭농사를 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무인도로 남아 있다.
19세기  이곳이 멕시코 땅이었을 때는 멕시코정부에서 죄수들을 이곳까지 싣고와서
내려놓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이 내린 장소는 지금 PRISONER HARBOR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배가 섬의 동쪽 선착장인 SCORPION ANCHORAGE에 가까이 다가서면서
안개가 옅어지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햇빛 속에 드러나는 섬의 모습은
마치 약속의 땅인 양 신비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하선을 하면서 승객들은 크게 세 종류의 무리로 나뉘어졌다.
아내와 나처럼 당일 트레킹을 하러 온 사람들과
캠핑을 하러온 사람들 그리고 바다에서 카약을 즐기러 온 사람들.
원색에 가까운 카약 장비들이 파란 아침바다에 떠서 도드라져 보였다.

다양한 레져활동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은 확실히 우리보다 선진국이다.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잘 논다는 것'의 의미를 새겨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네 세상살이가 먹고 살기에도 빠듯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삶은 결국 일과 놀이의 균형이고 '잘 논다'는 것은 '잘 산다'는 의미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위 사진 : 아내와 내가 걸은 길

트레킹은 레인져 RANGER의 안내를 받으며 할 수도 있고 개별적으로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시작부만 레인져와 동행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별도의 코스로 잡았다.

언덕을 오르기 위해 계곡쪽으로 난 길을 걷다가 멀지 않은 곳에
여우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지구상에서 이곳 채널아일랜드의 몇몇 섬에만 산다는
ISLAND FOX였다. 어디서건 그리고 어떤 종류건 야생의 여우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레인져는 그것이 큰 행운이라고 말해주었다.
사람의 자취가 드물어서인지 채널아일랜드에는 여우 이외에도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희귀동식물 백여 종이 살아남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캘리포니아의 갈라파고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계곡을 오르면서 우리는 레인져와 헤어졌다.
우리는 능선을 오른 후 섬의 해안 절벽길을 따라 POTATO HABOR와
CAVERN POINT를 돌아오는 8키로미터 정도의 코스를 잡았다.


*위 사진 : DUDLEYA라는 사막형 식물. 건기에 대비하여 잎에 많은 수분을 저장한다고.

어제 다녀온 아나카파섬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신기할 정도로 새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오직 푸른 바다와 벌써 노랗게 변한 들과 산의
풀들이었다.
이른 봄 잠시 초록으로 번졌다간 이내 시드는 캘리포니아 일년생 풀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위 사진 : 트레킹을 마치고 들른 섬 내에 있는 비지터센터.

능선에 오른 뒤에 만나는 평탄한 길.
밝은 햇살과  푸른 바다.
그 사이로 늘 나와 같이 발걸음을 옮기는 아내.
나는 마치 삶에 이룰 것을 다 이룬 듯한 흡족한 마음이 되었다.
발걸음은 가볍고 카메라 셔터소리는 경쾌했다.
아내의 사랑스러운 웃음소리가 싱그러운 산들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나는 거기에 기쁨과 고마움으로 충만한  기도 같은 것을 자주 실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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