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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노노스쿨의 베짱이

by 장돌뱅이. 2022. 11. 26.

2019년 SK그룹에서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제공하는 노노스쿨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약 9개월에 걸쳐 한식조리를 메인으로 커피와 차 등 식문화 전반을 다룬 교육은 은퇴 후 받은 교육 중 가장 짜임새 있는 것이었다. 나만큼 (혹은 나보다) 노노스쿨을 더 반긴 것은 아내였다. 은퇴를 하기 전부터 아내에게서 서서히 넘겨받던 부엌일을 노노스쿨에 다니면서는 완전히 나의 '나와바리'로 접수를 하였기 때문이다. 
"당신이 직장에서 은퇴를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부엌에서 은퇴를 했다."
아내는 서로의 변화를 그렇게 정리했다.

노노스쿨 졸업생들은 한 달에 한번 모여 학교 주변에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전달하는 활동을 한다. 나는 그동안 손자'저하'를 모셔야 하는 일 이외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특히 올해는 더욱 그랬다.

어떤 일을 한 번도 안 한 것과 한 번이라도 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일년 내내 '베짱이'로만 남지는 말자는 생각에 올 마지막 도시락 만들기에 참석을 했다. 하도 오래간만이라 좀 겸연쩍기도 했지만 김장김치를 담그고 깍두기와 수육 등을 만들었다.

 소설가 김훈은 "전기밥솥 속에서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라고 했다. 음식을 만들어 가족들과 나눌 때면 거기엔 단순한 재료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낀다. 하루 세끼를 매일같이 진저리 치도록 반복해야 하는 음식과 밥상과 식사가 삶의 본질에 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도시락에 담은 반나절의 짧은 정성이 홀로 사는 분들에게도 아주 작은 연결 고리의 의미와 함께 전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년부터는 한 달에 한 번의 시간은 꼭 내야겠다.
백수이면서 여전히 뭐가 그리 바쁘게 살게 되는 것인지······
생에 지불할 수 있는 유일한 보험료는 우리의 작은 선행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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