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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갈치와 고등어

by 장돌뱅이. 2022. 12. 2.

제주살이 중인 아내의 친구를 통해 제주산 갈치를 구입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제주 함덕에서 지낼 때 오일장과 포구에서 사서 구이와 조림으로 먹은 갈치 맛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포실포실하고 은은한 단맛이 배인 갈치의 살은 입안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녹았다.
갈치는 겨울철에 대비해 살과 기름으로 몸을 잔뜩 불린 구시월 갈치가 으뜸이라고 한다.

오래전 울산에 살 적에 바다낚시를 따라 간 적이 있다. 도시 ‘촌놈’인 내가 배를 타고 바다에서 낚시를 해보았을 리 없다. 남들이 미끼까지 끼워준 릴 낚싯대를 들고 뱃전에서 하염없이 세월을 낚고 있는데, ‘뽀인트’가 좋지 않다고 자리를 옮기자는 소리가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릴을 돌려 낚싯줄을 감아올리는 순간, 무엇인가 햇살에 번뜩이는 것이 따라올라 왔다.

“와 갈치다!” 누군가 소릴 질렀다.
갈치는 칼치라고도 부른다더니 놈은 정말 잘 간 칼(刀)처럼 빛났다.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은백색이었다. 갈치는 제풀에 지쳐 움직임도 없이 축 늘어진 채로 낚시 바늘에 매달려 있었다. 
“쯧쯧 갈치가 어지간히 요동을 쳤을 텐데······ 떨리는 느낌이 없던가? 사람 생긴 것보다 둔하네.”
같이 낚시를 간 사람들이 나의 무딘 감각에 혀를 찼다. 

옛 문헌에 허리띠 같다고 해서 '군대어(裙帶魚)'라고도 하고 칡넝쿨처럼 길다고 '갈치(葛侈)'라고도 불렀다는 갈치는 성질이 사납고 급하다. 그물로 잡으면 서로 부대끼며 날뛰다 죽기 때문에 낚시로 잡아야 그나마 원형을 보존할 수 있다. 낚시로 잡아도 오래 살지 못한다. 갈치는 비늘이 없고 구아닌 성분의 흰색 가루로 덮여 있다. 독이 있기 때문에 회로 먹을 때는 이것을 제거해야 한다. 갈치가 머리를 세운 채로 헤엄을 친다는 사실은 신기하다. 쉴 때도 서서 쉰다. 급할 경우에만 W자로 헤엄친다고 한다. 

외국생활을 하며 국산 갈치보다 더 크고 굵은 갈치들을 먹어보았다. 그러나 육질이 푸석하고 맛이 싱거워 국산 갈치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어릴 적 갈치를 먹다가 가끔씩 가시가 목에 걸리곤 했다. 요즘은 위험하다고 금지된 해결책이지만 그 시절 어른들은 맨밥을 크게 한술 떠서 꿀꺽 삼키라고 했다.

아내는 기다란 참빗을 도마 위에 놓고 도막도막 자른다. 아이는 빗살무늬 사이에 낀 공기를 발라 먹는다. 아이의 목에 빗살 하나가 걸려 푸드덕거린다. 아이가 캑캑거리며 운다.
-김기택,「갈치」 중에서-

갈치구이는 연탄이나 숯불 위에 직화로 소금을 뿌려가며 구워야 제맛일 터이지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구웠다. 노릇노릇하게 튀기듯 구워낸 도톰한 갈치살은 기대했던 맛과 만족을 주었다.
아내는 손자들을 먹여야 한다며 몇 토막을 별도로 갈무리 해놓았다.

택배 속에는 제주산 자반고등어도 한 마리 들어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 중의 하나가 고등어다. 고등어는 구이, 무조림, 김치찜, 무얼 해 먹어도 맛이 있다. 고등어파스타도 가끔씩 해 먹는다. 처음엔 비린내가 날 것 같아 저어하다가 한번 만들어 먹어보니 색다른 맛이었다. 요즈음은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는 양이 줄어 노르웨이산이 대세인 듯하지만 다른 생선에 비해선 여전히 가격이 저렴한 서민적인 어류이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 보다
소금에 절여 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 김창완의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 중에서 -

갈치와 함께 온 고등어를 어떻게 해 먹을까 하다가 역시 갈치처럼 튀긴 듯 구워 먹었다.
몸에 좋다 는 이른바 '등 푸른' 생선의 대표격인 고등어.

········· 한때 넉넉한 바다를 익명으로 떠돌 적에 아직 그것은 등이 푸른 자유였다·········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을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 속을, 대체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뜬금없이 공지영의 소설 『고등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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