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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못다한 믹스커피

by 장돌뱅이. 2022. 11. 27.

Henry Ossawa Tanner, 「The Thankful Poor」1894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원룸에서 모녀가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5만 원에 계약된 방에서였다.

"집주인은 모녀가 6개월가량 월세를 연체하고 있었다고 했다. 집안 책상에 놓인 월세 송금 은행 영수증도 지난 5월 중순에 납부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들의 세간살이는 단출했다. 24㎡(약 8평)도 되지 않는 원룸에는 화장실이 하나 딸려있었고, 매트리스 ·책상·냉장고·싱크대 정도가 전부였다. 작은 옷장에는 옷 10여 벌 정도만 걸려 있었다. 책상엔 영어 참고서 2권과 모기약, 화장할 때 쓰는 스펀지와 브러시 등이 남겨져 있었다. 현관에는 신발 두 켤레, 싱크대엔 칫솔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냉장고에는 빈 그릇과 컵, 고추냉이, 케첩과 물뿐이었다. 쌀봉투엔 2인분 분량만 남겨져 있었다. 전기밥솥이 있었지만, 전선을 정리해 밥솥 안에 넣어둔 것으로 보아 사용한 지 오래된 것으로 보였다. 이밖에 먹을 것이라고는 믹스커피뿐이었다." (25일 자 한겨레신문)

2인분의 쌀과 믹스커피 두 개······  못다한 삶의 흔적들이 애잔하다.
그림처럼 빵 한 조각을 위한 기도는  겸허하지만  나는 'thankful'한 가난을 알지 못한다.

 아마존 밀림에서 한 사람이 발견되었다 이십여년 홀로 살아남은 사람 벌목꾼에게 부족들 몰살당한 뒤로 초막 한채 가죽옷에 사냥 도구 몇개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했을까 오직 생존만을 위해서 존재할 수 있을까 기다릴 사람조차 하나 없다면 영원히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기억에서 말이 다 사라진 뒤에도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는 자신을 야생과 어떻게 구분했을까 그는 자유로웠을까 자연은 그를 포근히 감싸주었을까 잔인한 포식자였을까

 천만이 사는 도시에서 누구는 수십 년만에 또 어떤 모녀는 이십 년 만에 발견되기도 했다. 회색의 밀림에서 실종된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이웃들은 야생의 포식자였을까


 초막 같은 단칸방에서 밤이면 문밖에서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 들어야 했을까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했을까

-  백무산,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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