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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책 『소란스러운 동거』

by 장돌뱅이. 2022. 12. 4.

저자 박은영은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저자는 사회가 정해 놓은 '표준과는 다른 몸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온 30여 년의 자전적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책에는 누군가의 '거룩한 희생'에 자신의 굳센 의지를 더하여, 장애를 신의 '은사'로 받아들여 감사하게 되었다거나, 각고의 노력 끝에  '표준인'들보다 더  큰 어떤 성취를 이룩했다는 입지전적인 '감동'의 스토리는 없다.

대신에  '표준과 다른 몸'을 가진 여성으로 살면서 부딪쳐야 했던 차별과 고통의 경험, 그리고  "장애는 몸에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관계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는 '소란스러운' 주장을 담았다. "장애는  '비정상적인 몸'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특정한 몸을 배제하는 사회 구조 때문에 만들어지는 하나의 '상황'"이며, "비장애인만을 위해 설계된 사회가 손상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회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저해함으로써 장애인들을 '장애화' 시킨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원하는 곳을 갈 권리, 가족들과 함께 집에 살 권리, 적절한 교육을 받을 권리, 타인과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권리, 사랑하고 연애하고 가정을 꾸릴 권리, 노동해서 생계를 유지할 권리"는 비장애인들에게는 굳이 '권리'라는 말을 붙이지도 않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이 최소한의 기본 권리가 장애인들에게는 보장되지 않거나 심지어 어떤 일은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생존의 목표가 된다.

이런 현실과 마주하여 자신은 물론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의 온전한 삶을 모색하는 저자의 '소란스러운 수다'는  절실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 온전한 삶의 의미에는 비장애인(사회)의 왜곡된 인식과 결핍에대한 치유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장애인이 감수하는 불편과 고통은, 장애인이란 특정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보편적 인권의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책 속 글 중에 '장애인'을  '소수자'라는 단어를 치환하면 그대로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성소수자, 노약자, 환자, 비정규직, 남녀, 계급, 지역 등의 다양한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공간에서 장애인이 경험하는 불편과 불이익에 구성원 전체가 주목하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도모하면, 장애인은 불편함을 견디는 대신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양질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이 글 속의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다수자'와 '소수자'로 바꾸어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지 않은가.  

"왜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장애인이 어떻게 일을 하지?"
"장애인도 연애를 하나?"

오래도록 비장애인(다수자)을 '표준'으로 삼아온 사회는 장애인(소수자)에게 무례한 질문을 던져왔다. 이제 합리적인 관심과 합리적인 무관심의 경계를 유지하며 이렇게 정중히 묻고 겸손한 자세로 그들의 대답을 들어야 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당신을 위한 자리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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